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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 : 명정전, 문정전.

관주 觀周 2022. 4. 2. 07:03

창경궁 명정전 (昌慶宮 明政殿)

Myeongjeongjeon Hall of Changgyeonggung Palace

-. 일시 : 2022년 3월 31(목) 

-. 장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 185 (와룡동, 창경궁)

-. 내용 : 창덕궁과 창경궁 일대를 친구와 둘이서 약 3시간동안 돌아보면서

           사진촬영 및 가벼운산책을 즐겼습니다.

   

명정전은 창경궁의 정전으로 신하들이 임금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거나 국가의

큰 행사를 치루던 장소로 사용하였으며, 외국 사신을 맞이하던 장소로도 이용하였다.

조선 성종 15(1484)에 지었는데,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광해군 8(1616)에 다시 지었다.

   

앞면 5칸·옆면 3칸 규모의 1층 건물로, 경복궁의 근정전과 창덕궁의 인정전이 2층 규모로

거대하게 지어진 것에 비해 궁궐의 정전으로서는 작은 규모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며,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기둥 위의 장식적인 짜임은 그 짜임새가 매우 견실하며, 그 형태가 힘차고 균형이 잡혀 있어

조선 전기의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내부 바닥에는 벽돌을 깔았고 왕이 앉는 의자 뒤로

해와 달, 5개의 봉우리가 그려진 일월오악도 병풍을 설치하였다.

건물 계단 앞에는 신하들의 신분을 나타내는 24개의 품계석이 놓여 있다.
  

명정전 남측의 문정전과 주변 행각은 1983년부터 3년간에 걸친 복원공사로 대부분

복원하였고일제 때 격하되었던 창경원의 명칭을 창경궁으로 환원하였다.

창경궁의 명정전은 임진왜란 이후에 다시 지은 건물이지만, 조선 전기 건축 양식의 특징을

잘 계승하고 있는 건물로 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창경궁 문정전 昌慶宮 文政殿

창경궁 문정전 昌慶宮 文政殿

창경궁의 편전이다. 편전은 평상시 임금이 신하들과 함께 나랏일을 보고 경연을 하던 곳으로 1483년(성종 14년)

창경궁 창건 때 지었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616년(광해군 8년)에 복구했다.

그러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창경궁을 놀이공원 창경원으로 만든 후, 1930년대에 헐었다.

1983년에 창경원을 서울대공원으로 옮긴 후 1984년에 발굴 조사를 했고 1986년에 복원하여 오늘에 이른다.

 

창경궁 문정전 昌慶宮 文政殿

창경궁 자체가 원래 대비들을 모시기 위해 지은 궁이라 규모가 작기 때문에 문정전 또한 편전 치고는 작은 편이다.

보통 편전은 정전의 북쪽에 위치한 경우가 대부분인데 창경궁의 경우는 명정전의 바로 남쪽에 거의 붙어있다시피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 정전들은 남향이지만 명정전은 동향이기 때문에 

두 건물이 서로 토라져 등돌린 듯 마냥 틀어져 있다.

  

창경궁 문정전 昌慶宮 文政殿

1530년(중종 25년) 성종의 계비이자 중종의 어머니인 정현왕후 윤씨의 혼전이 설치된 것을 시작으로, 

조선 후기에 들어 본격적으로 혼전/빈전[3]의 기능을 주로 맡아 사실상 편전으로서의 역할을 상실했다. 

 

창경궁 문정전 昌慶宮 文政殿

바닥은 마루이기 때문에 주로 늦봄에서 초가을까지 사용했다.

제일 북쪽 중앙에 옥좌가 있으며 당가를 설치하여 왕의 권위를 돋보이게 했다.

옥좌는 원래 경복궁 사정전처럼 단 위에 있어야하나 복원할 당시 재현하지 못했다.

 

창경궁 문정전 昌慶宮 文政殿

내삼출목, 외이출목에 다포 양식으로 지었으며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내부는 칸막이 없이 하나의 공간으로 뚫려있으며 대들보 위를 우물천장으로 가려 서까래가 바로 보이지 않게 했다. 

그리고 실내에도 단청을 칠하여 보존성을 높임과 동시에 화려함을 나타내었다. 

 

창경궁 문정전 昌慶宮 文政殿

편전이지만 정작 왕들이 정사를 돌보거나 경연을 한 경우는 드물고 여러 잔치들을 이 곳에서 많이 열었다. 

연산군이 연회를 즐겼고, 1517년(중종 12)에 궁궐 잔치 중 하나인 진풍정(進豐呈)이 열리기도 했다. 

문정전을 편전으로 가장 많이 사용한 임금은 인조이다. 인조반정, 이괄의 난 등으로 

창덕궁이 중건한 지 얼마나 됐다고 몇 번 불타자 창경궁 문정전을 편전으로 사용했던 것.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은 곳이 바로 이 문정전 앞 마당이다.

 

창경궁 문정전 昌慶宮 文政殿

 1989년 MBC 《조선왕조 500년 - 한중록》과 1995년 SBS 《장희빈》.

《한중록》에서는 뒤주에 갇힌 사도세자의 모습을 실제 현장인 이 곳 뜰에서 촬영했고

《장희빈》에서는 희빈 장씨가 중전이던 시절 중궁전 외곽의 일부로 간간히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