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행

문화탐방 "오대산 상원사"

관주 觀周 2009. 9. 21. 18:49

  觀主의 카메라 기행 

문화탐방 "오대산 상원사".

 

  -. 일시 : 2009. 09. 20. 06:00 - 21:00

-. 장소 :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 주제 : 오대산지역 문화 탐방.   

오대산은 동쪽에 만월대(滿月臺), 서쪽에 장령대(長嶺臺), 남쪽에 기린대(麒麟臺), 북쪽에 상삼대(象三臺), 중앙에 지공대(知工臺)가 있어 이들 5개의 대를 꼽아 오대산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도 하고, 또는 중대,동대,서대,남대,북대에 각기 석가,관음,미,지장,문수의 부처가 상주하며 설법하는 성지이므로 이 이름이 붙여졌다고도 전해진다.

 

 오대산은 주봉인 비로봉(1,563.4m), 호령봉(1,561m), 상왕봉(1,491m), 두로봉(1,421.9m), 동대산(1,433.5m)등이 원을 그리고 이어져 있으며,1975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오대산은 진고개를 지나는 국도를 사이에 두고 비로봉, 호령봉, 상왕봉, 두로봉, 동대산의 다섯 봉우리와 그 사이의 많은 사찰들로 구성된 평창의 오대산지구(월정사지구), 그리고 노인봉 (1,338m)을 중심으로 하는 강릉의 소금강지구로 나뉜다. 오대산은 유서 깊은 명찰 월정사를 위시해 상원사, 적멸보궁, 등 불교문화 유적이 즐비하며,.오대산국립공원의 제1관문격인 월정사에는 팔각구층석탑이 있고  진입로 2㎞ 구간에 전개된 아름드리 전나무 숲길은 매우 좋은 분위기를 안겨준다 . 

 

상원사 上院寺

상원사는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珍富面) 동산리(東山里)의 오대산(五臺山)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月精寺)의 말사로, 월정사와는 이웃하고 있다. 원래의 절은 724년(신라 성덕왕 23) 신라의 대국통(大國統)이었고 통도사(通度寺) 등을 창건한 자장(慈藏)이 지었다고 한다. 

 

 고양이 석상.

세조가 등창이 심하여 오대산에 좋은 물의 효험을 얻고자 상원사에 들렸을때 법당에 숨어있던 자객의

존재를 알려 위험을 피하게 해준 보답으로 고양이 형상으로 석상을 세우게 했다는 전설이 있다. 

 

 

 

 

 

  

 

 

 

상원사동종(上院寺銅鍾) 

오대산 상원사에 있는 동종으로 신라 성덕왕 24년(725)에 만들어졌다.경주 성덕대왕신종(국보 제29호)과 더불어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신라시대 범종 2구 중 하나이며, 크기는 높이 167cm, 입지름 91cm이다.이 종의 맨 위에는 큰 머리에 굳센 발톱의

용이 고리를 이루고 있고, 소리의 울림을 도와주는 음통(音筒)이 연꽃과 덩굴 무늬로 장식되어 있다.종 몸체의 아래 위에

있는 넓은 띠와 사각형의 유곽은 구슬 장식으로 테두리를 하고 그 안쪽에 덩굴을 새긴 다음 드문드문 1∼4구의 악기를 연주

하는 주악상(奏樂像)을 두었다.4곳의 유곽 안에는 연꽃 모양의 유두를 9개씩 두었다.그 밑으로 마주보는 2곳에 구름 위에서

무릎꿇고 하늘을 날며 악기를 연주하는 비천상(飛天像)을 새겼다.비천상 사이에는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撞座)를 구슬과

연꽃 무늬로 장식하였다.이 종은 조각 수법이 뛰어나며 종 몸체의 아래와 위의 끝부분이 안으로 좁혀지는 고풍스런 모습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종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것으로 한국종의 고유한 특색을 모두 갖추고 있다.

  

  종의 맨 위에는 큰 머리에 굳센 발톱의 용이 고리를 이루고 있고, 소리의 울림을 도와주는 음통(音筒)이 연꽃과 덩굴 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종 몸체의 아래 위에 있는 넓은 띠와 사각형의 유곽은 구슬 장식으로 테두리를 하고 그 안쪽에 덩굴을 새긴 다음 드문드문 1∼4구의 악기를 연주하는 주악상(奏樂像)을 두었다. 네 곳의 유곽 안에는 연꽃 모양의 유두를 9개씩 두었다. 그 밑으로 마주보는 2곳에 구름 위에서 무릎꿇고 하늘을 날며 악기를 연주하는 비천상(飛天像)을 새겼다. 비천상 사이에는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撞座)를 구슬과 연꽃 무늬로 장식하였다. 

 

 이 종은 조각 수법이 뛰어나며 종 몸체의 아래와 위의 끝부분이 안으로 좁혀지는 고풍스런 모습을 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종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것으로 한국 종의 고유한 특색을 모두 갖추고 있다.  현재 오대산 상원사에 있는데 사연은 다음과 같다. 세조는 전국에서 제일 좋은 종을 상원사로 옮기려고 했는데, 안동부의 종이 뽑혔다. 이 종은 ‘소리가 우렁차고 맑아 멀리 백리까지 들린다’고 하였고, 안동의 어느 절에 있던 것을 안동부 남문루로 옮겨져 시각을 알리는 구실을 했다.  

 

 이 종을 수레를 이용해 옮기는데, 종이 죽령을 넘으려고 고개의 정상부근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수레가 움직이지 않았다. 온갖 방법을 동원해도 허사였다.  이 때 한 관원이 ‘이 종이 옛 고장을 떠나기 서러워서인가?’하는 생각에 종의 윗부분 유곽 안에 있는 연꽃 모양의 유두 하나를 떼어 안동으로 보내자 수레가 움직였다고 한다. 실제로 잘 관찰해보면 36개의 유두 가운데 한 개를 떼어낸 자국이 남아 있다. 그래서 이 상원사 동종의 유래는 고향을 떠나는 서러움, 이별의 아픔을 나타내는데 종종 이용되고 있다. 참고로, 종의 유두는 한국 종에만 있는 특징인데, 종의 상단부에 마치 젖꼭지 모양으로 여러개 돋아 있는 돌기로서 소리를 좋게 하기 위하여 이렇게 만든다고 한다. 공학적으로는, 진동체에 특정 위치에 질량을 부과하여 진동체의 고유진동수를 조절하는 것이다 전문용어로는 "튜닝(Tunning)이라 한다. 

 

 상원사의 "중대사자암".

  삼국유사에 이르기를, 중대 풍로산(風爐山, 혹은 지로산)은 비로자나불을 상수로 1만의 문수보살께서 상주하시는 곳이라 했

다. 중대는 원래 조그만 암자로 내려다 보는 풍광이 너무나 수려한 곳이었다. 비로전 오르는 층계의 월대에 두 마리 사자가

법륜을 끌고 있는 형상이 있고. 모든 사찰 법당의 불단은 사자가 받치고 있다.

 

1999년부터 8년간 중대증축공사로 건립된 비로전은 법당과 요사채를 함께 갖춘 계단식 5층 건물로  연건평 500평 규모로 지금은 공양간,요사채,기도처,교육장,템플스테이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편액에 비로전이라고 씌어있는 사자암은 태종임금 때인 1400년 경왕가의 도움을 받아 적멸보궁을 지키는 암자로 세워졌다고 하며, 세조12년(1466) 상원사 낙성 때 세조가 보궁에 올라 예배하고 공양과 보시를 하였다고 세조실록에 기록되었다고 한다. 
 

 이후 왕실의 내원당으로, 명종 때에는 대비의 보호아래 잡역을 면제받았고, 왕실의 보조로 사세를 유지해왔으며, 고종15년

(1878) 개건되어 요사체로 사용되던 향각이 낡고 헐어 중수를 거듭하였다. 2006년에 완공된 중대 비로전 안에는 300년된 은행나무에 28개월간 정성으로 연화장세계를 조성하였고 협시불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봉안하고 점안하였다. 법당에는 화엄경의 주불인 비로자나불을 모셨다. 주불을 중심으로 흰 코끼리를 탄 보현보살과 푸른 사자를 탄 문수보살이 좌우 협시보살로 모셔져있는데 문수보살이 탄 사자가 초록색인 점이 신기했다.

 

 이곳이 문수보살이 상주하는 곳임을 상징하여 온 법당 벽면가득히 5백의 문수보살과, 5백의 문수동자를 돋을새김으로

 조각하고, 후불탱화로 1000 문수보살 연화장세계 목탱화는 그 장대한 작품에 잠시 멍한 놀라움에 빠졌다.

 

 

 

 

 

 

 

 

 

 한암스님이 들고 다니던 단풍나무 지팡이를 상원사 산 중턱의 중대 사자암 앞뜰에 심었는데 지팡이가 꽂힌 자리에서 잎사귀

와 가지가 돋아 나무가 되었으며 몇해전 까지도 그 단풍나무가 서 있었다. 하지만 사자암을 개축하는 과정에서 옮겨심는 바

람에 고사하고 말았다. 안타까운 일이다

 

 

 

 

 

가을을 알리는 단풍나무가 곱게 물들어 있다.

 

  

 

 사자암에서 약 20분여분 올라가면 적멸보궁이 나타난다.  오대산 상원사 적멸보궁은 의 비로봉을 등지고 좌우로 상왕봉과 호령봉을 거느려 풍수상으로도 용이 여의주를 문 형상이라고 한다.그래서인지 기와의 용마루 끝에는 여의주를 문 용의 형상을 한 기와를 얹었다. 이 절은 석가세존의 정골사리(頂骨舍利)를 모셨기 때문에 따로 불상을 모시지 않고, 보궁 뒤 1m 높이의 판석에 석탑을 모각한 마애불탑이 상징적으로 서 있을 뿐이다.

 

 한국에는 신라의 승려 자장(慈藏)이 당나라에서 돌아올 때 가져온 부처의 사리와 정골(頂骨)을 나누어 봉안한 5대 적멸보궁이 있다. 양산 통도사(通度寺), 강원도 오대산 중대(中臺)의 월정사(月精寺), 설악산 봉정암(鳳頂庵), 태백산 정암사(淨巖寺), 사자산 법흥사(法興寺) 적멸보궁이 그것이다.

 

오대산 월정사의 적멸보궁.

 

 사자암.

 

사자암의 석등.

 

 

 

 

 

관대걸이 /  세조와 문수보살. 

 "중전, 방금 꿈에 현덕왕후(단종의 모친 · 세조의 형수) 혼백이 나타나 내 몸에 침을 뱉지 않겠소" 이튿날 아침. 이게 웬

일인가. 꿈에 현덕왕후가 뱉은 침자리마다 종기가 돋아나고 있다니... 세조는 아연실색했다. 종기는 차츰 온몸으로 퍼지더

니 고름이 나는 등 점점 악화되었다. 명의와 신약이 모두 효험이 없었다. 임금은 중전에게 말했다. 『백약이 무효이니 내

아무래도 대찰을 찾아 부처님께 기도를 올려야겠소.』 "그렇게 하시지요. 문수도량인 오대산 상원사가 기도처로는 적합할

듯 하옵니다." 왕은 오대산으로 발길을 옮겼다. 월정산에서 참배를 마치고 상원사로 가던 중 장엄한 산세와 맑은 계곡물 등

절경에 취한 세조는 불현듯 산간벽수에 목욕을 하고 싶었다. 자신의 추한 모습을 신하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늘 어의를 풀지 않았던 세조는 그날도 주위를 물린 채 혼자 계곡물에 몸을 담그고 목욕을 즐겼다. 그때였다. 숲속에서 놀고 있는 조그마한 한 동자승이 세조의 눈에 띄었다. 『이리와서 내 등 좀 밀어주지 않으련?』 동자승이 내려와 등을 다 밀자 임금은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단단히 부탁의 말을 일렀다. 『그대는 어디 가서든지 임금의 옥체를 씻었다고 말하지 말라.』 『대왕도 어디가서 문수보살을 친견했다고 말하지 마시오.』 이렇게 응수한 동자는 홀연히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왕은 놀라 주위를 살피다 자신의 몸을 보니 몸의 종기가 씻은듯이 나은 것을 알게 됐다. 왕은 크게 감격했다. 환궁하자마자 화공을 불러 자신이 본 문수동자를 그리게 했다. 기억력을 더듬어 몇 번의 교정을 거친 끝에 실제와 비슷한 동자상이 완성되자 상원사에 봉안토록 했다. 현재 상원사에는 문수동자 화상(畵像)은 없고, 얼마 전 다량의 국보가 쏟아져 나온 목각문수동자상이 모셔져 있다. 또 세조가 문수동자상을 친견했던 월정사에서 상원사로 갈라지는 큰 길목 10km 지점은 임금이 그곳 나무에 의관 을 걸었다 하여 「갓걸이」또는 「관대걸이」라고 부른다.

 

 

  

 
원본이 가지런히 보관되여 있는곳    초대 : 왕대장 큰아빠
http://blog.daum.net/afa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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