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지중해연안 4개국

13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聖)가족'성당 : 내부.

관주 觀周 2018. 6. 8. 18:13



지중해 연안 4개국과 아랍에미리트 여행 : 스페인 편

13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聖)가족'성당 : 내부.





 



-. 일시 : 2018.  05. 15.
-. 장소 :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 있는 로마가톨릭교의 성당.
-. 인원 : KBS사우회회원 14명.
-. 카메라 : Canon EOS 6D




 





사그라다 파밀리아 [Sagrada Familia/Temple Expiatori de la Sagrada Familia]






 












 












 












 



주황색 4각형 안의 숫자는 그곳에서 촬영한 사진량을 표시한것으로
이날 바로셀로나 성가족성당과 구엘공원, 몬세라트 수도원에서
내가 촬영한 사진만 599장을 촬영했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Sagrada Familia/Temple Expiatori de la Sagrada Familia]



내부 전경.




 



사그라다 파밀리아(La Sagrada Familia, 1882~1926, 성가족 성당)
바르셀로나 마요르까 거리에 신 고딕양식으로 세워지고 있는 「성가족 성당」은
1866년에 처음 계획되었다. 기계화와 근대화로 점차 타락해져 가는 도시생활을
정화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신의 집'뿐이라는 한 출판업자의 확신에서 출발한
「성가족 성당」은 명칭에서 의미하는 것처럼 가족들이 모여 기도할 수 있는 곳으로 계획되었다.
그래서 성당의 주제 또한 예수, 마리아, 요셉 세 사람의 성스런 가족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차가운 인간의 영혼을 정화시킬 성당의 건축비를 위해 성당건축위원회가 설립되었고,
공식적인 모금도 시작되었다. 1882년 설계를 부탁받은 건축가 빌랴르는 좋은 취지의
계획이었기에 돈을 받지 않고 50명의 노동자와 함께 성당을 짓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성당을 무조건 싸게만 지으려고 하는 교구의 자세에 빌랴르는 환멸을 느껴 결국 작업을
포기했고, 자신의 후임자로 제자인 가우디를 추천하게 되었다. 그렇게 가우디가
본격적으로 이 성당의 공사에 참여한 것은 1883년 지하의 납골당 기둥이

반 정도 건립될 무렵이었다.




 



젊은 건축가가 공사를 맡게 되었으니 건축비를 좀더 아낄 수 있을 것이라는 교구의 기대는
완전히 빗나갔다. 가우디가 공사를 맡으면서 빌랴르가 설계한 초기의 디자인은 폐기되고
완전히 새롭게 시작하였다. 이미 가우디의 머릿속에는 가장 성스럽고 가장 아름다운 성당이
그려지고 있었다. 가우디는 「성가족 성당」을 통해 카탈루냐의 정신을 제대로 표현하고
싶었고 또한 완벽한 가우디의 성격으로 인해 작업은 결코 '대충'될 수 없었다. 교구의
만성적인 적자는 공사를 종종 중단시키는 위기가 되기도 하였으나, 공사의 느린 진행은
오히려 가우디에게 종교적인 상징을 완벽하게 설계에 반영하고 충분히 검토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 교회는 신이 머무는 곳으로, 기도하는 장소입니다.
여기에 모인 우리 모두는 로마의 카타콤베에 있는 초기 교회에서
기도를 드렸던 사람들과 같은 마음으로 기도를 드립니다.
크리프타 위에는 주 제단을 설치하고 평면도는 라틴 십자형으로
다섯 개의 회랑(回廊)과 바실리카 양식의 회랑 세 개를 만들 것입니다.
세 개의 정문을 갖추고 정면에는 마요르카 거리와 마주한 다섯 개의
회랑에 상응하는 다섯 개의 입구를 갖출 것입니다.




 



그리고 양 옆 문에는 다섯 개의 회랑에 상응하는 세 개의 입구를 만들 것입니다.……
각 정문에 네 개의 탑이 설치되고 삼면에서 12사도를 표현해낼 것입니다.……
교회는 돔에서 비추는 빛과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조합되어
아름다움이 넘쳐흐를 것입니다.
영광된 빛이 교회 안의 색채를 밝게 비추겠지요.……
이 교회가 세워지는 중요한 이유는 신의 집과 기도와 명상의 집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 교회는 종교를 올바르게 볼 수 있는, 넓게 열려진 공간이 될 것입니다.



 



갑부들의 저택을 건축할 당시 느꼈던 건축주들의 횡포와 독선은 가우디로 하여금
더욱더 종교적인 건축에 열의를 바치도록 만들었을지 모른다. 가우디는 「성가족 성당」을
통해 지금까지 자신이 쌓아 온 모든 경험을 모아 최고의 걸작품을 만들 것이라고
스스로 다짐했다. 가우디가 건축을 통해 혹은 조각을 통해 표현하고 싶었던 것들이
하나하나씩 가우디의 머릿속을 채워나갔다. 1906년 건물의 계획이 마무리되면서 가우디는
예수의 '탄생'과 '수난'과 '영광'을 의미하는 세 개의 정면 중 '탄생' 부분을 작업하기 시작하였다.
「성가족 성당」의 정면이 될 '탄생'은 하늘을 찌를 듯한 4개의 포물 첨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첨탑을 이루고 있는 돌 하나하나는 예수의 탄생을 의미하는 정교한 조각들로 이루어져 있다.




 



「성가족 성당」은 돌과 종교와 예술이 삼위일체를 이루는 작품으로, 가우디 스스로
속죄사원이라고 칭하면서 건축하는 과정을 자기희생의 과정으로 생각했다고 전해진다.
성당 전체는 '돌로 만들어진 성서'로서 장인들이 직접 손과 연장으로 성서에 기록된
장면들과 가르침 등을 장식과 상징들로 구체화시키고 있다.




 











 












 












 












 












 












 












 












 












 












 












 












 












 












 












 












 












 












 












 












 












 












 












 












 












 












 












 












 












 












 












 












 












 












 












 












 












 



원본이 가지런히 보관되여 있는곳 http://blog.daum.net/afakim/13716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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