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행

철의 삼각 전적관

관주 觀周 2009. 10. 30. 15:55

  觀主의 카메라 기행  : 중서부 전선.

 

철의 삼각 전적관.   [2009. 10. 25. 촬영]

 

 

 철의 삼각지는 김화(金化)·철원(鐵原)·평강(平康)을 잇는 지도상의 개념으로, 6·25전쟁 당시의 격전지.

 

 1951년 6월 23일 야코프 말리크 소련 국제연합(UN) 대표가 UN에서 6·25전쟁의 휴전협상을 제의하고, 6월 30일

미국의 M. B. 리지웨이 UN군 사령관이 이를 정식으로 동의함으로써 6·25전쟁은 교착상태에 돌입했다.

휴전회담을 고려한 미국과 UN은 북한을 협상에 끌어들이기 위해 승리도 패배도 아닌 제한정책을 전개하고자 했다.

 

 초기에 낙관적이었던 휴전회담은 교착상태에 빠지고 휴전회담과 전투가 동시에 벌어지게 되었다. 북한과 남한은

휴전이 이루어지기까지 최대한의 영토를 탈환하려 했다. 그리하여 지금의 휴전선을 중심으로 서부에서 동부까지

전지역에 고지를 점령하려는 전투가 계속되었다.

 

 이곳 철의 삼각지는 중부전선에 위치한 곳으로 도로망이 여러 곳으로 발달한 전략요충지였다. 1951년 9월 북한은

중국인민지원군과 함께 철의 삼각지 안의 백마고지·수도고지·저격병능선 등을 집중적으로 하여 대공세를 전개했다.

이곳의 전투는 휴전이 성립되기 직전인 1953년 7월 13일까지 마지막 공세와 수세가 계속되던 곳이다. 이곳은 6·25

전쟁중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곳으로, 결국 김화와 철원은 남한의 영토로, 평강은 북한의 영토로 확정되었다.

 

 

 

 

 

 

 

 
 

차이콥스키의 1812년 서곡
1812년 9월 나포\폴레옹은 60만의 대군을 거느리고 모스크바를 침공하여 이를 함락시키려 했다.
그들은 겨울이 오기전에 승리를 거두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 당시 러시아 사람들은
모스크바 시를 불태워 버렸으므로 나폴레옹 군대는 굶주림과 추위와 기병대에 쫓기어 마침내
패잔병  3만명이 간신이 파리로 물러나는 비참한 패배를 당했다.

 

이에  러시아는 그같은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모스크바에 큰 교회를 세웠는데 차이코프스키는
이 축전을 기념하기 위해  이같은 작품 <1812년> 서곡 을 작곡하였다.  이 작품이 초연되었
을때 교회의 광장에는 대편성의 오케스트라가 동원되었는데 도중에 북이 나오는 곳에서

포병대의 축포를 쏘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것은 마치  표제음악과 같은 맛이 나는 장엄한 서곡인데  여기에는 프랑스 국가와  크레믈
린을 암시하는 종소리등이 교묘하게 사용되어있다. 나폴레옹 군대를 상징하는 프랑스의 국가
마르세유의 노래가 단편적으로 나타나며 러시아 국민의 명랑한 기분을 암시하는 민요풍의
무곡 멜로디도 나타난다.

 

 

 

원본이 가지런히 보관되여 있는곳    초대 : 觀主의 쉼터.
http://blog.daum.net/afa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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