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행

연천군에 있는 신라 경순 왕릉.

관주 觀周 2009. 11. 4. 15:54

  觀主의 카메라 기행  : 중서부 전선.

 

연천군에 있는 신라 경순 왕릉.   [2009. 10. 25. 촬영]

 

    종   목 : 사적 244호(1975. 6.25)                      
  소재지 : 경기 연천군 백학면 고랑포리 산18-2.
                            신라 제56대 경순왕(敬順王 927~935)의 능(陵).

 

 공이 고려 경종 3년(978. 4. 4) 별세하자 시호(諡號)를 경순(敬順)이라 하고 왕의 예로서 장례를 모시고 능을 조영

(造營)하였으나 오랫동안 잊혀져 있다가 조선 영조 23년(1747) 감사 김성운과 첨정 김응호 등이 봉축하고 제사

하였으나 6.25후 방치 되었다가 1975년 사적으로 지정되어 지금의 형태로 정화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무덤은 높이 3m, 둘레 19.5m, 외형은 둥근봉토분[圓形封土墳], 밑둘레에는 판석(板石)을 이용하여 무덤보호를 위해

 병풍처럼 돌렸고 능 주위로는 곡장(曲墻)이 돌려져 있다. 능 앞에 혼유석(魂遊石)이 놓여 있고 ‘新羅敬順王之陵

(신라경순왕지릉)’이라고 새긴 표석(105 .857cm)이 세워져 있는데, 뒷면에는 5행으로 경순왕의 간략한 생애를

기술한 87자의 음기로 이루어져 있다. 이 표석의 내용에 의하여 경순왕의 무덤임이 확인되었고, 1747년(영조 23)

에 이 비를 세운 것을 알게 되었다. 능 앞에 있는 기타 석물로는 장명등(160cm), 석양(105?cm) 및 망주석(150cm)

2개가 마련되어 있다

 

   신라 왕릉의 경우 곡장이 마련된 것이 없으나, 고려시대에 들어와서 왕릉에 비로소 곡장을 마련하고 있어

 묘비에서와 같이 경순왕이 죽자 왕의 예로서 무덤을 만들었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좌측에는 1986년에 새로 건립된 1칸 규모의 비각과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맞배형지붕으로 된 재실이 있는데,

비각 안에는 경순왕의 신도비로 추정되는 비가 있다. 이 비는 6.25 전까지 고랑포리 시가지에 있었으나 수복 전후 도로

에 계속 방치되어 오던 것을 원당리 고랑포 초등학교 교정에 옮겨 보호해 오다 1986년 비각을 새로 건립하면서

지금의 위치로 옮겨와 보존하게 된 것이다.

 

 대좌는 최근에 화강암으로 다시 마련하였고 비신은 높이 132cm, 폭 66cm, 두께 15cm 규모에 상단을 모죽임한 변성암

재질로 되어 있다. 비문은 심하게 마멸되어 전혀 판독이 불가능한 상태이며 비신 중간과 하단의 일부분에서 10자

정도가 확인될 뿐이다.

 

  경순왕릉은 신라의 여러 왕릉 가운데 유일하게 경기도 내에 있는 것으로 옛 고랑포나루터 뒤편의 남방한계선과

인접한 곳에 잘 정비되어 있다

 

 경순대왕 릉비 

- 전면 : ‘新羅敬順王之陵(신라경순왕지릉)’                                                                                                        
- 후면 역문.                                                                                                                                                   
  경순왕은 신라 56대왕으로 후당(後唐) 천성(天成) 2년 무자(戊子=928년)년에 경애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셨고

  청태(淸泰) 을미(乙未=935년)년에 고려에 양위하셨고 송나라 태평흥국 무인(戊寅)년(서기978년) 고려 경종3년 4월

4일에 흉사하시었거늘 시호를 경순(敬順)이라하고 왕례로서 장단 고부 남8리에 계좌(癸坐)之原에 장사하였다.   
     지극하신 행실이요 순진하신 덕이리라      영명(英明)하신 모법(模法)이 굳세고 빛나리라.                                     
     성상(聖上;영조) 23년 정묘(1747년) 4월4일 개립(改立)하다.                                                                               

 

 

 

 

 

 

 함께여행중인 "여의 문화 사랑회" 회원님과 함께.....

 

 "여의 문화 사랑회"는 여의도에서 개업중인 전문의사, 원장님들이 주축이된 순수 문화 탐방 모임으로 매월 1회씩

지역을 선정 문화탐방을 하고있다. 9월에는 강원도 봉평, 인제등을 둘러 보았고, 10월에는 철원 연천등, 중서부

전선이 인접한 지역을 둘러 보았으며, 11월 문화탐방 예정지는 강화도 일원을 계획하고 있다.

 



수제천[壽齊天]
            
〈대악후보 大樂後譜〉에 정읍(井邑)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려 때는 궁중춤인 무고(舞鼓)의 중간에 무녀들에 의해서 불렸는데
이 전통은 조선시대 궁중과 지방 관아에서도 계속되었으나
조선 중기 이후에는 가사가 탈락되어 관악합주의 순기악곡으로 전한다.
모두 4장으로 구성되었으며 1·2·3장은 각각 6장단이고, 4장은 2장단이다.
1·2장의 선율과 구조는 같고, 3장은 1·2장보다 4도 위로 조옮김한 것이며,
4장은 다시 원래의 조로 돌아가서 마친다. 정읍을 빗가락정읍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악학궤범〉에 의하면 남려가 주음이 되는 계면조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수제천은 남려(A)·태주(太簇 : F)·고선(姑洗 : G)·임종(林鍾 : B♭)의
4음음계인 계면조 곡이다. 악기편성은 향피리·대금·소금·해금·아쟁·장구·좌고·박으로 구성된다.
1장에서 3장의 마지막 장단은 피리·장구·타악기가 쉬는 동안에 대금·소금·해금·아쟁으로 연주하는데,
이를 여음(餘音)이라 한다. 장구장단을 칠 때도 각 장단의 맨 처음을 합장단 '덩'으로 하지 않고
'기덕쿵'으로 채편을 친 다음 바로 북편을 치는데, 이를 '갈라친다'고 하며 느린
음악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수제천은 흔히 '아악(雅樂)의 백미'라 하며
한국 궁중음악의 대표로 일컫는다.
 

 

원본이 가지런히 보관되여 있는곳    초대 : 觀主의 쉼터.
http://blog.daum.net/afa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