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사진/캄보디아

07. 작은 킬링필드 왓트마이.

관주 觀周 2009. 3. 14. 09:22

   觀主의 카메라 기행 : 동남아편  

07. 작은 킬링필드 왓트마이. 
 

 작은 킬링필드라 불리 우는 왓트마이는 씨엠립 시내에서 1.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1975년부터 79년까지 3년 7개월 동안 크메르루즈 군에 의해 인구 600만명중 3/1에 해당하는 200만명의 캄보디아인들이 학살당하는 끔찍한 사건이 있었는데         영화 '킬링필드'를 통해 전 세계에 알려진 이 대학살은 인간의 잔인함과 전쟁의 참혹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크메르루즈군이 200만명을 죽였다는 견해는 미국이 자신의 과오를 숨기기 위한 과장에 가깝다는 견해도 있다.
1969년부터 캄보디아는 베트남 전쟁에 말려들었다. 미국은 캄보디아 내에 있다고 의심되는 공산군 기지를 궤멸시키기 위해 비밀 융단폭격을 실시했다. 1970년 미국과 월남군은 월맹군의 뿌리를 뽑기 위해 캄보디아를 침공했고 무고한         25만의 양민이 죽었다. 이후 캄보디아 전체가 참혹한 싸움에 빠져들었으며 사이공이 함락되기 2주 전인 1975년 4월17일 크메르루즈가 프놈펜을 점령함으로써 전쟁이 끝났다. 곧 크메르루즈의 지도자 폴포트의 지휘아래 지금까지 행해진 것 중에서 그 어떤 것보다 급진적이고 잔인한 사회개조가 시도되었다.                                                                        

 

 킬링필드 학살 희생자들의 유골로 채워진 위령 사리탑

 

     크메르루즈군은 캄보디아를 무력으로 공산화 한 후에 농업적 공산주의를 주장하면서 수많은 반대세력과 지식인층 그리고 무고한 양민들을 무참히 학살했다. 정부의 일을 했거나 군부에 있었던 사람들은 즉시 사살하였고,         시민들을 협동농장식 자급자족을 시킨다는 미명 하에 강제 노역에 동원하려고 지방으로 이주시켰다.               
이주하는 동안 식량부족으로 인한 굶주림과 극한의 피로, 그리고 말라리아에 걸려 죽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폴 포트의 이념에 맞는 국가를 만들기위해 저지른 만행으로 3년7개월간의 통치기간중 이루 형언할 수 없는 만행을 그는 그의 민족에게 저질렀던 것이다.                                                                                                         

 

 

 

 새로 신축중에있는 시엔립의 킬링필드 추모관.

 

 킬링필드의 희생자 200만명 중 80만명은 미군의 민간인 시설 폭격으로 사망하였고, 크메르 루즈군의 학살로 사망한 희생자가 30여만명, 이후 고립정책으로 인한 기아와 질병으로 추가로 80여만명이 사망했다고 하는 주장도 있다.     
이곳에는 그 당시에 학살당한 사람들의 유골을 모아놓은 곳으로 유명한 곳인데 섬뜩한 학살의 내용을 설명 들으며   어떻게 인간이 그럴 수 있나 싶었다. 드릴로 살아있는 사람의 뒤통수를 뚫어 죽이는 등의 차마 표현도 소름끼치는         악랄한 방법으로 자기네 동포들을 몰살시켰다니 믿기지 않고 영 마음이 무거웠다. 학살을 자행한 폴 포트라는 지도자의  급진공산정권(1975~79)은 캄보디아 국민에게 수백만 명에 대한 살해와 추방, 질병과 기아 등을 유산으로 남겨놓았다.

 

 

 

 

 

킬링필드 란?1975년~1979년까지 캄보디아의 군벌 샐로스 사르가 이끄는 크메르 루주라는 무장단체에 의해 저질러진 학살을 말한다. 크메르 루주는 3년 7개월간 전체 인구 600만 명 중 1/3에 해당하는 200만 명에 가까운 국민들을 학살했다.

 

[위령 사리탑]킬링필드는 1970년대 중반 캄보디아에서 일어난 대학살을 의미하는 용어로 '죽음의 들'이란 뜻이다. 폴포트는가 이끄는 크메르루즈군은 캄보디아를 무력으로 공산화 한 후에 농업적 공산주의를 주장하면서 수많은 반대세력과 지식인층         그리고 무고한 양민들을 무참히 학살했다. 그래서 그 살육현장에서 수 만개의 해골들이 나오게 되었는데 이 집단 무덤을 킬링필드라고 하는 것이다. 캄보디아는 원래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었고 프랑스 통치 이후에 미국, 일본에게도 통치       당했던 역사가 있었다.                                                                                                                                        

 

 캄보디아 농민들은 낮에는 논밭에서 일하다가 폭격으로 죽고, 밤에는 집에서 자다 네이팜탄에 불타 죽었다.        5만∼15만 명의 농민들이 목숨을 잃고, 200만 명이 논밭을 버리고 난민이 됐다. 따라서 “캄보디아의 ‘킬링필드’는 크메르루주 치하의 1970년대 후반이 아니라 이미 1960년대에 시작됐다”고 말하는 것이 맞다.                     

 

 드릴로 살아있는 사람의 뒤통수를 뚫어 죽이는 소름끼치는 악랄한 방법.

 

        사건은 30년 전에 벌어졌지만, 킬핑필드 관련자에 대한 공식 기소 절차는 최근 들어서야 시작됐다. 향후 재판이 열릴 장소는 캄보디아와 유엔이 2006년 7월 공동으로 설립한 캄보디아 국제전범재판소 법정. 그곳에 서게 될 피고들은 이제는 다들 노인이 된 크메르루주 정권 지도자들이다. 이 가운데 실제로 몇 명이나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게 될지는 불투명하다.    크메르루주 최고지도자 폴 포트는 1998년 캄보디아 북부 정글에서 73살로 눈을 감았다.                                            

 

 폴 포트의 이념에 맞는 국가를 만들기위해 저지른 만행인 것이다. 3년7개월간의 통치기간중 이루 형언할 수 없는    만행을 그는 그의 민족에게 저질렀던 것이다. 세계 쌀생산국 4위의 캄보디아가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            4위에 있으니 한 국가 지도자의 철학에 따라 그 민족의 장래가 어떻게 변화 되는가를 역사는 생생하게 증언을 해주고있다.

 

 킬링필드 학살 희생자들의 500여 유골로 채워진 위령 사리탑 속의 유골들.

 

 

 

   

 

 

 

 

 
 초대 : 왕대장 큰아빠    http://blog.daum.net/afa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