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동유럽 여행

19. 나치의 악명 높은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

관주 觀周 2008. 12. 23. 14:04

觀主의 동유럽 카메라 기행  

19. 나치의 악명 높은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

 
폴란드  크라쿠프에서 서쪽으로 50㎞ 지점에 있는 작은 공업도시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 최대의 강제수용소
 이자 집단학살수용소인 아우슈비츠수용소가 있었던 곳으로 유명하다.  현재 박물관이 되어 있다. 원래 지명은 오슈비
엥침이다. 철도의 교차점으로 화학·피혁·농기구 제조 등이 발달 되였다. 13세기 이후 도시로 발전하였으며,  폴란드
분할시대인 1772년 오스트리아에 귀속되었다가 1918년 폴란드가 공화국으로 독립하면서 폴란드에 귀속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39년 동안 독일군에게 점령당하였다.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 입구  "일하면 자유로워진다" 라는 독일어 구호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1940년 4월 27일 유대인 절멸(絶滅)을 위해 광분하였던 H.힘러의 명령 아래 나치스친위대(SS)가 이곳에 첫번째

수용소를 세웠으며, 그해 6월 이 아우슈비츠 1호에 최초로 폴란드 정치범들이 수용되었다. 그 뒤 히틀러의   

명령으로 1941년 대량살해시설로 확대되어 아우슈비츠 2호와 3호가 세워졌고, 1945년 1월까지 나치스는   

이곳에서 250만∼400만 명의 유대인을 살해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로 인해 ‘아우슈비츠’는 나치 의 유대인   

대량학살을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                                                                                                   

 

 

 

 

 

수용소는 전체 28동의 빨간 벽돌 건물로 되어 있으며 건물 방에는 유태인을 처형했던 독 가스실과 처형당한

사람들의 사진, 유물들을 전시하는 전시장, 시신를 태웠던 화장장 등 그 당시 참혹했던 역사의 현장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1979년에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였다.

 

 

 

 

 고압 전기가 흘럿던 2중 철조망 울타리.

고달픈 수용소 생활을 견디지못한 수용자들이 직접 뛰여 들어 자살을 택하기도 했던 을씨년 스러운 철조망 울타리.

 

 

 

 

 "일하면 자유로워 진다."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자유는 오직 일하는 시간뿐이다...과연 누구를 위한 "자유"이었을까 ?

각 동마다 남겨진 것들은 그당시 이곳에서 어떤일이 벌어졌는지 한발짝 걷기가 무섭게 보면 볼수록

그 두려움이 온몸을 감싸돌고 있는 것처럼 전율이 느껴져 온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더 잘 이해하고 글을쓰기위하여 여행후 영화 "쉰들러 리스트"를 DVD로 다시 보았다.    영화를 촬영 한곳은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아니고, 이곳에서 조금 떨어져 있고 훨씬 규모가 큰 비르케나우 수용소에서

셋트를 제작, 촬영 하였다고 한다. 비르케나우 수용소는 폐전직후 나치가 대부분 건물을 파괴하여 현제는 드 넓은  

부지위에 그 당시의 철로, 일부 건물등이  남겨진 그대로 보여주는 곳이라면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현재 박물관으로

개조해서그당시의 아픔들이 눈앞에서 보는것 처럼 사진으로, 기록으로, 그리고 희생자들이 남긴 유품들이 적나라  

하게 전시되어 있는 곳이다.                                                                                                                    

 

 

 

 

 대형 학살의 현장 폴란드 오슈비엥침 아우슈비츠...   

1933년부터 1945년 12년 동안 독일 나치정권에 의해 약 600만명 정도가 학살당했고

그중 약110만명 이 내가 지금 서있는 이곳 아우슈비츠에서 사망 당 했다고 한다.

 

 

  

 

 

  

 

  

 

 

 

 대형학살의 도구였던 독 가스 치클론B 의 빈통들 한통으로 400명을 학살할수 있는 량이란다.  모형이 아니고 실제 그당시 사용한것을 수거해서 전시한 것이란다.

 

 

  희생자들의 모발이 가득 쌓여있는 전시장 모습과 머리카락으로 짠 천. [아래] 

 

  

 

 

 

당시 희생자들이 착용하였던 안경들. 

 

 

 

 희생자들이 착용하였던 의족및 기타 유물들. 

 

 

 

  4,  5번 전시장에는 희생자들의 사진과 가방과 모자, 의복, 식기, 편지 등이 전시되어 있다. 쉰들러 리스트 영화에서 보듯이 휴대할수있는 짐은 15Kg으로 한정 하였기에 저 위의 가방속에는 현금등, 귀중품이 가득 담겨져 있었던 가방들이다. 65여년 전의 제품들이기에 희생된 이들이 얼마나 지식인, 부호들인지 짐작이 간다. 

 

 

 

 어린 아이들의 옷과 장난감. 

 

 

 

희생자들의 신발, 모두가 가죽으로 제작된 고급 신발들이다. 

 

 

 

65여년전  구두솔, 옷솔, 면도시 사용하는 비누솔등 부호들이 사용하던 제품들이다.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의 독 가스실이다.발가벗겨 목욕을 시킨다고 거짓말을 하여 수백명씩 강제로 독가스로 학살하였던 바로 그 역사의 현장이다.벽면을 자세히 보면 독가스가 뿜어져 나올때 고통을 못이겨 손톱으로 긁은 자국이 벽면에 아직 남아있어 그 어떤 보수작업도 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영화 쉰들러리스트 중에서

 

 

 

독 가스실에서 죽어 나오는 시신을 화장하는 화장장 이다.옆 건물 독가스실에서 수 백명씩 죽어나오는 시신을 화장처리 하는곳으로 바로 인접한 건물이다. 동시에 4구의 시신을 처리하는곳인데 을씨년스러움과 오싹한 전률이 온몸을 감싸오며 어뒤에선가 그때 한을 못이겨 고통을 호소하는 희생자 영혼이 튀여 나올것 같다.  

 

 화장터의 굴뚝이다. 신들러 리스트의 영화를 보면 마지막 부분에 꿀뚝에서 연기가 활활 타올라가는것을 볼수있다.  

 

 세계 각국에서 모여드는 조문객및 관람객들. 특히 유태인들의 조문객이 많다. 

 

수용소를 둘러본후 말을 잊어버리고 멍한 상태로, 몸이 굳어져서 있는 나의 모습이다.

아침에 현지 가이드의 첫말이 "오늘은 천국과 지옥을 경험하실것입니다" 하고 말을 이어 갔었는데...  

천국은 18회에서 돌아본 크라카우 중세도시를 본다는것이도 약 50Km정도 떨어져있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지옥을 지칭한것이다.  정말로 지옥을 경험하고 나온 느낌인것 같다.

 

 

 

 

 

  
THEME FROM SCHINDLER'S LIST
 체코슬로바키아 태생의 독일 국적, 사업가 Oskar Schindler(1908-1974) 는독일군 장교에게 구출할 사람 숫자대로 뇌물을 주는 방법으로 유대인들을 구해내려는 계획을 세우고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함께 구해낼 유대인들의 명단, 이른바 "쉰들러 리스트" 라는 걸 만든다.

Oskar Schindler는 마침내 1,100명의 유대인들을 폴란드에서 구해낸다.   한사람의 힘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숫자이다. 그의 도움으로 살아남은 이들이 종전 후에 감사의 표시로 반지에다 그 유명한
"탈무드"의 한구절을 새겨서 선물했다는데 바로 그 구절이 전쟁의 참혹성을 뛰어넘은 휴머니즘의 테마이기도 하다.

 

"한 생명을 구하면 전 세계를 구하는 것이다."

 

 
다음  20회는 독일 역사의 중심지 베르린을 연재할 예정 입니다. 
 
원본이 가지런히 보관되여 있는곳   "왕대장 큰아빠"   다시보기 클릭    http://blog.daum.net/afa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