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행

동작동 국립묘지 둘러보기

관주 觀周 2008. 10. 31. 13:20

 




동작동 국립묘지 둘러보기

 

 

 

 국립묘지는 관악산 기슭의 공작봉을 주봉으로 하여 동작의 능선이 병풍치듯 3면을 감싸고 있으며 앞에는 한강이 굽이쳐 돌고 있다.

43만여 평의 이곳 성역에는 구한 말의 의병들을 위시하여 조국 광복을 위하여 투쟁하신 애국지사, 나라의 발전과 민족의 번영을 위해

평생을 바치신 국가 유공자,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다, 장렬히 산화하신 국군 장병과 경찰관, 예비군 등 165,000여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이 잠들어 있다. 이 중 10만 4천여위는 현충탑내 위패 봉안관에 위패로 봉안 되었고,

시신은 찾았으나 그 이름을 알 수 없는 7,000여 무명용사는 납골당에 모셔져 있으며, 54,000여 위는 묘역에 안장되어 있다.

묘역은 애국지사 묘역, 임정요인 묘역, 국가 유공자묘역, 장병묘역 (장교 - 사병), 경찰 묘역 등으로 나뉘어져 있다. 경내에는 현충탑,

현충문, 충성분수대, 현충지, 현충관(영화관), 사진 전시관, 유품전시관, 각 시도 공원 등이 설치되어 있으며, 1955년 국군묘지로 창설되어

1965년 국립묘지로 승격되었으며, 기관 명칭은 1996. 6.1 국립묘지관리소에서 국립 현충원으로 변경하였다.

매년 6월 6일 현충일에는 거국적인 추념행사가 거행된다.

 

 

 풍수지리학으로 풀이하면....

국립서울현충원은 한강과 과천 사이 넓은 벌판에 우뚝 솟은 관악산 공작봉(孔雀峰)기슭에 위치해 있다.                                            
공작봉은 관악산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뻗어내려 불끈 솟아올랐다가는 엎드리는 듯 줄기와 봉우리가 만나고 헤어지면서 늠름한 군사들이

여러 겹으로 호위하는 모양으로 기운이 뭉쳐 있다.                                                                                                                   


   사방의 산은 군인들이 모여 아침 조회를 하는 것처럼 보이고 지하의 여러 갈래 물줄기가 교류하여 생기가 넘치는 명당자리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전체의 형국은 공작이 아름다운 날개를 쭉 펴고 있는 모습(孔作張)이며, 장군이 군사를 거느리고 있는 듯한 장군대좌형(將軍對座形)이다.

 

즉, 좌청룡(左靑龍 )의 형세는 웅장한 산맥의 흐름이 용이 머리를 들어 꿈틀 거리는 듯 한강을 감싸 호위하는 형상이고, 우백호(右白虎)의

형세는 힘이 센 호랑이가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는 듯하며 전후좌우로 솟은 사방의 봉우리와 산허리는 천군만마(千軍萬馬)가 줄지어 서 있는 형상과 같다.


정면 앞산을 바라보면 주객이 다정하게 마주앉은 모양이고, 멀리 보이는 산은 마치 물소뿔 모양이며 한강물은 동쪽에서 나와 서쪽으로

 흘러들어 마치 명주 폭이 바람에 나부끼듯 하늘거리며 공작봉을 감싸 흘러 내려가고 있다.


이와 같이 국립서울현충원이 위치한 공작봉은 산수의 기본이 유정(有情)하고 산세가 전후좌우에 펼쳐져 흐르는 듯하여 하나의 산봉우리,

한 방울의 물도 서로 조화를 이루지 않은 곳이 없으며 마치 목마른 코끼리가 물을 마시는 듯한 형상(渴形象)으로 그야말로 명당 중의 명당이라 할 수 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묘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

 

 

 

 

 

 

박정희 전대통령 묘비에 새긴글

 

- 전 면 -
박정희대통령
육영수영부인 묘

 

- 후 면 -
대한민국 박정희 대통령은 본관이 고령이며, 직강공의 26세손이신 박성빈공과 수원 백남의 여사의 네째 아드님으로 1917.

11. 14. 경상북도 선산군 구미면 상모리에서 태어나시어 1945년 건군과 함께 입대 1961년 5.16혁명을 주도 국가재건 최고회

의 의장이 되시고 1963년 육군대장으로 예편, 1963년 제5대로부터 1978년 제9대에 이르기까지 대통령을 역임하시는 동안 조

국 근대화의 기수로서 오천년 이래의 가난을 물리치시고 자립경제와 자주국방의 터전을 닦으시어 세계속의 풍요한 한국으로

부각시키셨으며, 겨레의 염원인 평화적 통일의 기틀을 마련하시는 등 민족중흥을 이룩하신 영도자로서 민족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위대한 업적을 남기시고 1979. 10. 26. 서울에서 향년 61로 서거, 삼천칠백만 온 국민의 애도 속에 11월 3일

국장으로 국립묘지에 안장되시다.                                                                                                                      
대통령 영부인 육영수 여사는 관성 육종관공과 경주 이경령 여사의 둘째 따님으로 1925년 11월 29일 충청북도 옥천에서

태어나시어 1950년 12월 대구에서 혼례를 올리셨으며 1974. 8. 15. 서울에서 향년 49로 순국, 8월 19일 국민장으로 박정희

대통령묘 왼편에 쌍분으로 안장되시다.


1980년 2월 2일 온 국민의 뜻을 모아 세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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