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사우회

문화탐방 : 고려궁지.

관주 觀周 2018. 5. 3. 09:40

 

 


2018춘계 문화탐방 : 고려궁지.

 




-. 일시 : 2018.  05. 02.(수요일)
-. 장소 :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도 일대.

고려궁지, 용흥궁, 성공회성당(천주성전),

평화전망대, 전등사, 갑곶돈대, 강화역사관.
-. 인원 : KBS사우회 회우 115명.


외규장각


정조 6년(1782)에 행궁 동쪽에 외규장각을 준공하고 지금까지 분산되어 있던 책들과 왕실의

족보·어필·어제·옥인·금보 등을 비롯해, 서울 궁성으로부터 의궤·옥책(옥돌에 새긴 책)들을

옮겨왔다. 이로써 외규장각은 포화상태가 될 만큼 귀한 자료들로 가득 찼다. 하나

외규장각은 1866년 프랑스 함대가 침입한 병인양요를 맞아 한꺼번에 큰 피해를 당하고 말았다.

프랑스인들은 특히 궁전과 외규장각에 관심을 갖고,

옥책과 은괴 19상자를 비롯해 귀중한 보물이다 싶은 것은 죄다 배에 실어 본국으로 빼돌렸다.



명위헌 현판


강화유수부 동헌

고려궁터에 있던 조선 시대 관아 건물로 오늘날의 군청과 같다. 강화부는 조선 인조 4년(1626)에

강화유수부로 승격. 이 무렵 이방청 등과 함께 지었으나 지금의 동헌이 그때 세운 건물은 아니다.

인조 16년(1638) 개수를 거쳐 1977년 복원·수리하였다. 1769년 영조 때는 현윤관(顯允觀)이란

현판이 잠시 걸려 있었으나 현재는 명위헌(明威軒)이라 되어 있고,

글씨는 당시의 명필이며 학자인 백하 윤순(白下 尹淳)이 썼다.










건물은 이중의 장대석 기단 위에 네모꼴의 주초석을 놓고 네모로 다듬은 기둥을 세웠다.

정면 8칸 측면 3칸, 겹처마에 단층 팔작지붕이다. 중앙에는 대청마루가 깔려 있는데

그중 동쪽 한 칸은 바닥을 높여 층마루를 형성하였다.

전체적으로 특별한 장식이 없는 소박한 집이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47호이다.














































고려왕조가 몽골에 대항하기 위해 고종 19년(1232) 6월부터 개경으로 환도한 원종 11년(1270)

까지 39년간 머물렀던 궁터이다. 대몽항쟁은 그토록 지난한 싸움이었다. 강화로 천도한

고려는 2년 후인 1234년 궁궐과 관아의 건축을 모두 마쳤다. 『고려사절요』에 "최우는

이령군(二領軍)을 동원하여 이곳에 궁궐을 지었다. 규모는 비록 작으나 송도의 궁궐과

비슷하게 지었고, 궁궐의 뒷산 이름도 송악이라 불렀다"고 기록하고 있다.

개경을 그리워하며 저항의지를 키워 갔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이곳이 바로 실낱 같은 고려의 운명을 지켜온 궁터이다. 당초에는 행궁·이궁·가궐 등의

여러 궁궐과 정궁이 있었던 너른 터였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 고려궁터의 정확한 범위와

위치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궁궐 정문에는 승평문(昇平門)이, 그 양쪽에 3층루의

문 두 개가, 동쪽으론 광화문이 있었으나 1270년 환도할 때 모두 허물어졌다고 한다.













































































 


원본이 가지런히 보관되여 있는곳 http://blog.daum.net/afakim/13716079

 

Daum Blog 觀主의 카메라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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