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여행/서안낙양정주

양귀비(楊貴妃)의 화청궁

관주 觀周 2010. 4. 21. 08:13

    觀主의 카메라 기행  : 중국 서안.

양귀비(楊貴妃)의 화청궁.

 

[사전]  화청지 : 중국 산시 성(陝西省) 시안(西安)의 리산(驪山) 산록에 있는 온천.
진시황 때 돌을 깎아 집을 만들어 명신(名神)들의 온천지가 되었다고 하며 온천수가 풍부하여

주나라 때부터 무려 3천여 년 간 온천 휴양지로서 유명하다.

 

 

 

 서주 말기에 주 유왕은 지금의 이곳에 리궁을 세웠다. 당나라 때인 644년에는 당태종 이세민이 탕취안궁을 지었고

현종이 이를 증축한 뒤 화청궁이라 개칭하였다. 당현종과 양귀비의 연애시절에는 이곳이 매우 번성하였고, 당시

정치의 중심지가 되었다가, 안사의 난 이후로 화청지는 쇠퇴하기 시작했다 한다.

 

 당 천보원년(742) 현종은 못을 만들어 대대적으로 보수하였고,  못이 화청궁안에 있기 때문에 화청지라고 명명하였다.

황제의 욕탕인 구룡전(九龍殿) 연화탕과 양귀비에게 하사한 욕탕인 해당탕(海棠湯) 등이 있다. 화청궁의 전체 구조는

 6문(門), 10전(殿), 4루(樓), 3각(閣), 5탕(湯)으로 이루어져 있다.   면적은 60만㎡. 

 

화청지 뒤로 있는 산이 驪山(여산)이다.

 

 화청궁 평면도.

 

현종과 양귀비의 화려한 연회장. 현종, 양귀비와 안록산을 찾아보세요.

 

 화청지는 당현종과 양귀비의 역사적인 러브스토리의 무대이다. 양귀비의 본명은 양옥환으로 본래 현종의 아들인

수왕의 비였다. 며느리인 셈이다. 자신의 아내가 죽자 그녀를 후궁으로 받아 드렸다고 한다. 도를 중시하는 중국에서는

매우 지탄받을 일이였는데 이를 무마하기 위하여 현종은 일단 양귀비를 도교의 승으로 출가 시킨후에 다시 궁으로

불러들이는 편법까지 동원했다고 한다.

 

양귀비와 현종이 심었다는 석류나무. 

이때 양귀비의 나이 22세, 현종은 57세 였다. 얼굴뿐 아니라 노래와 춤도 뛰여 났고

특히 비파의 명수 였으며,  머리 회전이 빨라 현종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현종이 양귀비에게 푹빠져 정치를 소홀히 한 탓에 나라가 흐트러지고 결국 안록산이 난을 일으켜 궁지에 빠진다.

현종은 서쪽 사천성으로 도주를 해야 했으며 호위병사들이 현종에게 양귀비를 죽일것을 강요하고 결국 현종은

사랑하는 양귀비에게 목을맬 비단천을 내어줄수밖에 없었다.

 

   

 한편 서시, 왕소군, 초선과 더불어 중국의 4대 미인중의 한사람이였던 양귀비지만 지금의 미인기준과는 좀 달랐던것 같다.

당시 왕실의 시인으로 있던 이태백은 양귀비에 대하여 "허리가 굵어 몸매가 아름답지 못하고 용모도 그리 신통하지 못하다'

는 내용의 시를 썼다. 이시를 읽고 발끈한 양귀비가 현종을 충동질하여 이태백을 먼 나라로 귀양을 보내 버렸다고 한다.

 

 

 화청궁은 안녹산의 난으로 페허가 되었다가 5대 10국때 도교사원으로 개축 되였다. 청나라때 강희제가

이곳을 지나면서 보수하도록하여 당시 지어진 누대등이 남아있다. 지금의 모습은 화재로 불타 없어진것을

복원한 것이다. 양귀비에게 비운을 안겨준 안사의 난은 이곳을 지나면서 화청지를 황폐화 시켰다. 지금의

것은 예전의 크기에 1/7정도만 복원한것이라 하니 당시의 화려함이 대단하다 아니할수 없게 느껴진다.

 

 

 요염하고도 풍만한 양귀비의 형상을 백옥으로 만들어 놓았다.

 

  서시, 왕소군, 초선과 더불어 중국 4대 미인 중 한명으로 사람을 미혹하고 중독 시키는 아편인 양귀비로 이름한

것으로 보아 미모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가 보다. 백옥상이지만 미모와 자태가 잠시 정신을 몽롱하게 한다.

 

중국의 4대 미인중 한 명인 양귀비  

  중국의 4대 미인은 춘추전국시대의 서시(西施), 한나라의 왕소군(王昭君), 삼국시대의 초선(貂蟬), 그리고

당나라의 양귀비 (楊貴妃)라고 한다.  물고기가 미모에 놀라 헤엄치는 걸 잊고 가라앉았다는 ‘서시’, 또 기러기가

나는 것을   잊고 땅으로 떨어지게 만든 ‘왕소군’, 달이 부끄러워 구름 뒤로 숨었다는 ‘초선’ 및 꽃이 부끄러워

잎을 말아 올렸다는 '양귀비' 등 미인들의 미모에 얽힌 이야기가 많이 전해온다.  

 

 화청궁 정원을 돌아서면 목욕탕 유적 박물관이 있다. 그 중심에 백옥으로 조각한 높이 3m의 반라의 양귀비 상이 있다.

여우 가죽을 걸치고 몸을 반쯤 노출한 양귀비가 머리를 숙인 요염한자태로 천천히 욕탕으로 들어가는 모습이다.

 

 양귀비는 키가 180Cm  몸무게만도 80Kg 정도 나가는 육중한 몸이었다는 것을 듣고

나와는 궁합이 맞지를 않구나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보고.... 

 

 

 여기가  양귀비가 목욕을 했다는 곳, 해당탕.

해당탕은 귀비지라고도 하는데 양귀비가 전용으로 목욕을 하던 곳이다. 양귀비는 이곳에서 한약제와 꽃잎등을

넣고 목욕을 했다고 한다. 바닥의 옥돌에는 그 주인이 그녀임을 알려주는 '양'이 새겨저있다고 한다. 온천수로

채워져 있었을 해당탕은 관광객들이 던진 동전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현종의 전용 욕탕인 구룡전(九龍殿) 연화탕, 해당탕에 비해선 약간 단조로우나 웅장하고 황제의 위엄을 느끼게 한다.

 

 

 

 

 

 제일처음 온천수가 개발되였던곳, 우리말로하면 원조탕이다.

 

 화청지 온천수의 수온은 43℃ 이다. 풍부한 광물질과 미량의 원소가 함유되어 있으며,

지금도 온천욕을 하기에 적합하다고 한다.

 

 

 

 10 - 20 mm 광각 줌 렌즈를 사용하여 촬영.

 

 

 

  

 

화청궁 안의 오간청(五間廳)은 1936년에 시안사변(西安事變)이 일어났던 곳이기도 하다.

오간청에는 장개석이 잠깐 숙박하다가 장쉐량(張學良)에게 체포당하면서 생긴 총탄의 흔적과

구멍 뚫린 유리창 등이 당시 그대로 남아 있다. 

 

 

 

 

    

양옥환,  양귀비는 키가 180Cm  몸무게가  80Kg 정도 나가는 그래머....

아무리 손을 뼈쳐봐도 탐스러운 젓 가슴은 저 멀리만 느껴지고,

 아쉬운데로 배꼽만 만져보는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觀主가 너무나도 왜소해 보이지요 ?

 

 

 

초대 : 觀主의 쉼터.  http://blog.daum.net/afa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