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여행/서안낙양정주

병마용 박물관.

관주 觀周 2010. 4. 19. 18:37

    觀主의 카메라 기행  : 중국 서안.

병마용 박물관.

  

 

 1978년도에 이곳 발굴현장을 방문한 프랑스의 시라크 대통령이 그랬다고 한다. "피라미드를 보지 않으면

이집트에 다녀왔다고 할 수 없듯이 진용(秦俑)을 보지 않은 사람은 진정으로 중국에 다녀왔다고 할 수 없다."
남의 나라 유적 발굴 현장에  날려준 외교적인 수사임을 감안하더라도 '진(秦)'이 진정한 중국의 모태이며,

 이 유적이 진의 상징적 장소임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말이다. 시황이 6국을 병합하고 화폐, 도량형, 문자,

제도를 통합하지 않았던들 오늘날의 중국이 '중화'라는 이름으로 남아있을 수 있었을까?

 

 병마용 관람 코스는 1호갱 - 3호갱 - 2호갱 - 박물관 순으로 관람을 하게 된다.

 

병마용 최초 발견자인 전직 농부.

 병마용갱은 1974년 한 농부에 의해 발견되어 발굴조사가 시작되었다. 발견한 농부는 현제 병마용 박물관에서

그림엽서에 자기의 사인을 해주면서 일정금액을 받고 있으며 전체 입장객의 입장료 수익금에서도 일정부분 갖게

되여있어 모든 중국인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궁수 도용들 : 앉아쏴 자세(궤사수)

병마용 2호갱의 본진 최전방에 궁노병(弓弩兵)들로 구성된 방진(方陣)이 배열되어 있다. 방진 사방엔 강노를 든 입사수

(立射手 : '서서 쏴' 자세의 사수)가 방진 가운데엔 궤사수(墦射手 : 꿇어 앉은 자세의 사수)가 있다. 이는 그냥 배열이

아니라 실제 진 나라 군대의 전투진과 사격 교범을 반영한 것으로 영화 <영웅>에서 진 군대의 비 오듯 퍼붓는 화살과

벽을 뚫는 강궁의 묘사는 이에 따른 고증이다.

 

 

 

 '진'이라는 나라는 짧게 끝났으나, 진시황이 남긴 흔적은 길게 남았다. 그는 불가능이라 생각했던 모든 일들을 실현

했다. 13세의 어린 나위에 왕위에 올라 10년 만에 섭정 여불위(자신의 친아버지)를 끌어내리고 천하를 통일했다.

도전과 성취로 일관한 그의 삶 앞을 막은 '죽음'이라는 장애조차 극복하려 한 사내. 세간은 불로장생에 취한 그의

 만용을 비웃음을 사고 있으나 2,200 여년 전에 제작한 방대한 물량과 정교함에 그저 놀랍기만 하다.

 

 

병마용 하나하나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저 인물이 혹시 살아있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말은 당장

콧김을 뿜을 것 같이 생생하다. 눈초리의 변화로 다양한 표정을 유도하고 살아있는 느낌을 생생히 전달하고

있다.  당장 출진할 것 같은, 부릅뜬 눈과 다문 입으로 오로지 최고 지휘관의 출정명령만을 기다리는 듯한 

다부진 표정들이다. 2,200여년 전에 제작된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정도로 섬세하고 정교하게 제작되여 있다.

 

 

 

 

 

 

 

 

 

 동거마. 1500개 이상의 파편을 재조립하여 복원.

실물크기의 1/2로 전 세계 청동기 유물 중 가장 크며, 세계 야금 역사를 새로 써야할 대발견이라는 의의를 갖는다.

 

 

 

 

 

 1984년 병마용 참관을 마친 레이건이 기념촬영을 마치고 돌아서서 병마용 군진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고 한다.

"해산(dismiss)!". 세인들에게 재미를 주고자 한 행동으로 풀이 된다.
'해산! 그대들의 임무는 끝났다. 부디 흙 속에서 편히 잠들라!'

 

 

 

 

 

 

원본이 가지런히 보관되여 있는곳    초대 : 觀主의 쉼터.
http://blog.daum.net/afa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