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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르네상스의 꽃 피렌체.

관주 觀周 2008. 5. 30. 09:11

 23. 르네상스의 꽃 피렌체.

 미켈란젤로 광장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내려다본 피렌체 시가지 중앙의 돔이 산타마리아 델 피오래 대성당이다.

  르네상스 문화가 탄생한 예술 도시 피렌체 역사갈색의 지붕이 물결을 이루는 예술도시 피렌체, 가지런한 건물들 사이에서 베키오 궁전, 두오모 성당, 지오토의 종탑 이렇게 3개의 건물만이 우뚝 솟아있는 모습이 인상적인 도시입니다. 피렌체는 11세기 토스카나 지방의 중심도시로서 번창하였고, 12세기 초에는 시민에 의한 자치가 확립되어 자유도시가 되었습니다. 그에 따라 봉건제도 아래에서 영지를 받았던 권력자들이 권력의 상징으로 지었던 높은 탑들은 일정한 높이로 절단되었고, 높은 건물은 정치권력의 상징인 베키오 궁전, 종교 권력의 상징인 두오모 성당, 그리고 14세기에 지어진 지오토의 종탑만이 남아있게 되었다. 

 

 피렌체에서는 르네상스에 크게 공헌한 이탈리아의 명망 높은 가문인 메디치가의 영향을 지금도 찾아볼 수 있다. 메디치가는 15세기 중반부터 약 3세기에 걸쳐 이 거리를 지배하였는데 재정, 예술 양면에서 많은 예술가의 활동을 보호하고 지원을했다. 15세기 메디치가의 실권을 잡은 로렌초 일 마니피코(Lorenzo il Magnifico, 1449∼1492)는 13세의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의 재능을 찾아내어 본격적인 조각 공부를 시키는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피렌체를 르네상스 문화의 중심 도시로 구축해 나갔다. 메디치가의 보호 아래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다빈치 등 유명한 예술자들이 작품을 제작했고 그에 따라 르네상스 문화는 예술이나 건축을 통해 전 유럽으로 파급되였었다.  

 

 [피렌체의 시뇨리오 광장의 조각상] 

'지붕 없는 미술관'이라고도 칭해지는 피렌체에는, 조각이나 건축물 등 르네상스 문화의 유산이 여기저기에 남아 있다. 그중에서도, 피렌체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두오모 성당이다. 이 건물은 로마에서 고대 건축을 배운 브루넷레스키(Filippo Brunelleschi, 1377~1446)에 의해서 완성되였다. 높이 107m의 거대한 돔은 우주의 상징이며, 인간이 우주의 중심을 이룬다고 하는 르네상스의 개념을 나타낸 것이다. 그밖에도 피렌체에는 많은 예술작품과 건축물들이 남아 있어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 산으로 등록되여있다.(1982) 

 

 피렌체는 화려한 도시라고 불리는 예술의 도시이다. 온 마을에 위대한 예술가의 건축과 조각들이 들어차 있고 미술관에는 유명한 화가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거리 전체가 하나의 큰 미술관이라고 할 만큼 아름다운 도시이며 소설 '냉정과 열정사이'의 배경이 되기도해 이탈리아에 오는 많은 여행객이 잊지 않고 찾는 도시이다. 

 

 시뇨리아 광장의 각종 상. 

피렌체의 정치 중심지였던 시뇨리아 광장(Piazza della Signoria )

중세 이래로 피렌체의 중심인 시뇨리아 광장은 오늘날까지도 피렌체 사람뿐만 아니라 관광객들을 모으는

정치적인 연설과 시위의 장소로 남아있다. 광장에는 복제품을 비롯한 많은 예술작품들이 즐비해 있다. 

공화주의의 이상이 명백히 표현된 절대군주의 살해자,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복제본이고 원본은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있다.)에서 지암볼로냐(Giambologna)의 기수상의 듀크 코지모(Duke Cosimo) 1세의

초상화식 동상(1594년)과 사비니 여인의 강간까지, 이 곳에 있는 건축물에서 신화와 과거의 정치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광장 중앙에는 넵튠 분수가 있고 종교개혁을 주도하다 처형된

사보나롤라의 처형지라는 표식인 화강암도 보이며 저쪽으로는 베키오 궁전이 보인다.

최근 광장 밑에서의 발굴로 인해 중세의 건물뿐만 아니라 AD 1세기의 로마 건축양식도 있음이 알려졌다.

 

  

 

     

 피렌체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즉 꽃의 성모 마리아라는 뜻이다. 이 성당은 로마의 베드로 대성당과 밀라노의 대성당에 이어 이탈리아에서 세번째지만 소장 예술품의 중요도는 베드로 성당에 견줄 만하다. 피렌체 대성당은 조토의 종탑, 세례당 그리고 대성당 부속 박물관이 함께 어우러진 복합공간이다.  대성당 부속 박물관에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비롯하여 한 때 이 성당을 장식했던 르네상스 거장들의 조각, 회화, 금은 세공품들로 가득하다.  작품을 보호하기 위해 원래 성당에 있던 작품들을 박물관으로 옮겨 놓았다. 대성당을 비롯하여 건물 외벽에 보이는 조각들은 모두 모조품이며 진품은 박물관에서 감상할 수 있다. 

 

 피렌체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피렌체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두오모의 가장 높은 돔은 1463년 브루넬레스키가 제작했으며 건축 사다리없이 지어진

가장 큰 건축물이이자 최초의 르네상스식 건축물이었다
두오모의 외관과 일치된 양식의 아름답고 화려한 종탑은 1334년 조토에 의해 제작되기 시작해

1359년 탈렌티에 의해 완성되었다. 두오모의 쿠폴라보다 약간 낮으며

이 종탑의 꼭대기 까지는 414개의 계단을 올라야 한다 

 

피렌체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1296년 아르놀포 디 캄비오의 설계로 착공되었다. 공사 도중에 그가 죽자 조토에 이어 A.피사노가 공사를 인계받아, 그 동안 조토가 새로 계획하였던 정면 오른쪽의 대종탑을 거의 완성하였다. 또한 그 뒤를 이어받은 프란체스코탈렌티는 1357년 이래 건물 규모의 확장을 추진하여 1421년경에는 폭 42 m의 삼랑식(三廊式) 회당부(會堂部)와 지름이 이와 맞먹는 광대한 8각 평면의 내진(內陣), 그리고 여기서 세 방향으로 내물린 제실(祭室)을 완성하였다. 

 

피렌체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대원개(大圓蓋)의 공사는 광대한 내진 전체를 덮는 구상이었던 만큼 많은 기술적 어려움을 수반하여 착공이 늦어졌는데, 겨우 현상설계의 응모작품 가운데서 뽑힌 F.브루넬레스키의 설계를 바탕으로 그의 지휘하에 1420년에 작업이 개시되었다. 브루넬레스키는 우선 내진 위에 지름이 이와 맞먹는 8각의 탕부르(開口部가 있는 圓筒部)를 두고, 그 위에 8각 첨두형(尖頭形)의 독특한 2중 구조를 가진 대원개(大圓蓋)를 올리는 방법을 고안하여, 1434년에는 정탑(頂塔:란테르나) 부분만 남기고 이 난공사를 마쳤다. 

 

  바닥에서 91 m의 높이에 이르는 이 거대한 원개는 고딕의 늑골(리브) 궁륭(穹?)의 구조에 브루넬레스키의

뛰어난 창의가 곁들여 비로소 실현된 것으로 기부(基部)에서 탑 꼭대기에 이르는 굵은 8개의 대리석 리브와

그 사이를 메우는 벽돌로 된 8쌍의 구면(球面) 삼각형이 멋있는 대조를 이루는 풍부하고 힘찬 외관은

그야말로 피렌체시의 상징이라고 할 만하다. 

 

  건물 전체를 덮는 대원개의 프로포션은 전성기 르네상스의 이상이었던 원개(쿠폴라)중심의

구성의 선구적 역할을 하는 것으로서 의미가 깊다. 또한 당내(堂內)에는 예술의 도시 피렌체의

대성당에 어울리게 부속 미술관을 비롯한 여러 조각과 회화가 보존되어 있는데,

베첼로와 카스타뇨 등의 프레스코 벽화, 기베르티의 성유물(聖遺物) 상자와

미켈란젤로의 조상(彫像)《피에타》 등이 유명하다.

 

  

 

 

 단테 생가 두오모 성당에서 시뇨리아 광장으로 들어가는 좁은 골목길에 단테의 생가가 있다.

현재 이곳이 단테의 생가였다는 증거는 벽에 붙어있는 단테의 토르소(동체만의 조각작품)가 전부라고 한다.  

 

  산타 크로체 교회 (Chiesa di Santa Croce).

  피렌체 고딕 양식의 걸작으로 평가되는 산타 크로체 교회(Chiesa di Santa Croce).
고운 색깔의 대리석으로 장식된 아름다운 교회로, 건물 앞에는 단테의 동상이 서 있고,
안에는 미켈란젤로와 로시니, 갈릴레이 등의 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