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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경 청도초등47회 10월 나들이 사진

관주 觀周 2007. 10. 13. 10:34

 

 

 

창 덕 궁

 

서울 종로구 와룡동(臥龍洞)에 있는 조선시대의 궁궐이다.
1963년 1월 18일 사적 제122호로 지정되었다. 1405년(태종 5) 완공되었으며, 면적 43만 4877㎡이다. 태종(太宗)이 즉위한 후 1404년(태종 4) 한성(漢城)의 향교동(鄕校洞)에 이궁(離宮)을 짓기 시작하여 이듬해 완공하고 창덕궁이라 명명하였다. 그 후 계속 인정전(仁政殿)·선정전(宣政殿)·소덕전(昭德殿)·빈경당(賓慶堂)·여일전(麗日殿)·정월전(淨月殿)·옥화당(玉華堂) 등 많은 전당을 건립하였는데, 1412년 돈화문(敦化門)을 건립하여 궁궐의 면모를 갖추었다.

이 궁전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는데, 1607년(선조 40)에 그 복구가 시작되어 1610년(광해군 2)에 중건이 거의 끝났으나, 1623년 3월에 인정전을 제외한 대부분의 전각이 실화로 불탔으므로 1647년(인조 25)에야 그 복구가 완료되었다. 그 후에도 크고 작은 화재가 여러 차례 있었는데, 특히 1917년 대조전(大造殿)을 중심으로 내전 일곽이 소실되어 그 복구를 위하여 경복궁 내의 교태전(交泰殿)을 비롯하여 강녕전 동·서 행각 등의 많은 건물이 해체 전용되었다.

창덕궁은 많은 재앙을 입으면서도 여러 건물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왔는데, 1912년부터는 후원인 금원(禁苑)과 아울러 인정전을 관람할 수 있게 하였고, 8·15광복 후에도 창덕궁과 금원을 공개하고 있다. 창덕궁은 금원을 비롯하여 다른 부속건물이 비교적 원형으로 남아 있어 가장 중요한 고궁의 하나이다.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창덕궁(昌德宮) 인정전(仁政殿) 

 인정전은 1405년 창덕궁이 조성되면서 건립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1610년에 중건했다. 그러나 1803년(순조 3)에 다시 불에 타 이듬해에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내부는 한말에 고종이 순종에게 양위한 후에 일부를 서양식으로 개조하였으며, 양성된 각 마루에 당시 국장(國章)이던 이화(梨花) 문장을 새겨 넣었다.

 

 

 

 

 

 

 

 

 

 

 

 

 

 

 

 

 

 

 

 

부용정 (芙蓉亭) – 연못에 발을 담근 정자

 

 
비원이라고도 불리우는 창덕궁 후원중 가장 먼저 만나는 부용정.


부용지 초록빛 물에 두리기둥 두개 하얀 다리를 담그고 앉은 듯하고
부연을 단 겹처마에 지붕은 팔작지붕 기왓장에 낀 이끼 틈사이로 노오란 꽃 하나 피어있다.

부용지를 향해 열린 작은 툇마루에 옛사람들의 情이 묻어나고
서북쪽 계곡에서 흘러온 물이 용두로 된 석루조를 채우고 넘치는 물이 부용지를 채운다.



아름다운 정자 부용정

부용지의 작은 섬너머로 주합루와 어수문을 바라보고
둘러싸인 낮은 언덕의 숲에다 그 작은 몸을 감춘 듯 하다.


부용지는 가로세로가 30미터에 달하는 네모꼴의 큰 연못
동궐도를 보면, 옛날에는 이곳에 배를 띄워 놀았음을 알 수 있다.


그 한 가운데에는 동그란 섬을 만들어 놓았는데,
이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이라는 전통적 우주관에서 비롯되어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것이다.


전통건축에는 이런 숨은 뜻들이 많다.

 

 

 

 

 

 

 

 

 낙선재 돌담길에

진달래꽃
철쭉꽃이
철모르게 활짝피여

낙옆지는 길가에서
추위에 떨고있네

검붉은 단풍잎은
하나 둘 물드는데

낙선제 돌담길에
그늘진 자욱마다
님의 옷깃 스쳐가고

숭조 돈종
님의 말씀
가슴으로 쌓이는데

기약없이
떠난 님은
언제 다시 오시려나

 

 

 

  

 

 

 

 

 

 

 

 

 

 

觀主가 설계, 시공, 감독까지한  남산의 KBS 타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