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사우회

KBS사우회 사진동호회의 창경궁 출사

관주 觀周 2022. 5. 4. 09:54

창경궁 명정전 (昌慶宮 明政殿)

창경궁 명정전 (昌慶宮 明政殿)

-. 일시 : 2022년 5월 3(화) 

-. 장소 : 서울시 종로구 율곡로 창경궁.

-. 인원 : 강갑생, 권영근, 김광일, 김진평, 김형백, 김효경, 류인창, 박응칠, 박재헌, 박진우, 윤성원,

           이광수, 이봉중, 이상수, 이용택, 이항수, 정엽수, 지진웅, 한종훈, 허영구, 홍승미 (21명)

-. 내용 : 코로나때문에 활동에 제약을 받아 그동안 금지되였던 KBS사우회 사진동우회의

           야외촬영 행사를 창덕궁과 창경궁 일대를 돌아다니면서 즐겼습니다.

  

 

창경궁(昌慶宮)은 서울특별시에 있는 궁궐로 조선 성종(1483년) 때에 건축하였다.

창경궁은 서쪽으로 창덕궁과 붙어 있고 남쪽으로 종묘와 통하는곳에 자리하고 있다.

또, 고려의 국새를 넘겨받은 수창궁(壽昌宮)의 청심정(淸心亭)과 동일한 이름의 정자를 가까이하고 있다.

조선 시대에는 창덕궁과 함께 동궐(東闕)이라고 하였는데,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 붙어 있으면서

서로 보완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창경궁의 원래 이름은 수창궁(壽昌宮)과 매우 유사한 수강궁(壽康宮)으로 세종이 즉위하면서

상왕인 태종을 모시기 위하여 지은 것이다. 성종 14년(1483년) 세분의 대비를 모시기 위하여 

새로 중건하고 이름을 창경궁으로 바꾸었다. 

 

창경궁은 숙종이 인현왕후를 저주한 장희빈을 처형한 일과 영조가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인 일, 

정조가 승하한 일 등 크고 작은 궁중 비극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에 동물원과 식물원, 이왕가 박물관이 들어서고, 이름도 ‘창경원’으로 격하되는 등 수난을 겪었다.

1963년 1월에 사적 제123호로 지정되었고, 1983년에는 동물원과 식물원을 서울대공원으로 옮기고

이름도 창경궁으로 되찾았다.

 

명정문(明政門)은 창경궁의 정전인 명정전의 출입문이다

 

홍화문

홍화문(弘化門)은 창경궁의 정문이다. 정면 3, 측면 2칸의 중층 우진각지붕으로 동향이며,

문 왼쪽인 서북쪽 모서리에 계단이 있어서 위층으로 오르내릴 수 있다

대한민국 보물 384호로 지정되어 있다

 

명정문(明政門)은 창경궁의 정전인 명정전의 출입문이다.

 

 

명정전은 창경궁의 정전으로 신하들이 임금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거나 국가의

큰 행사를 치루던 장소로 사용하였으며, 외국 사신을 맞이하던 장소로도 이용하였다.

조선 성종 15(1484)에 지었는데,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광해군 8(1616)에 다시 지었다.

 

앞면 5칸·옆면 3칸 규모의 1층 건물로, 경복궁의 근정전과 창덕궁의 인정전이 2층 규모로

거대하게 지어진 것에 비해 궁궐의 정전으로서는 작은 규모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며,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기둥 위의 장식적인 짜임은 그 짜임새가 매우 견실하며, 그 형태가 힘차고 균형이 잡혀 있어

조선 전기의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내부 바닥에는 벽돌을 깔았고 왕이 앉는 의자 뒤로

해와 달, 5개의 봉우리가 그려진 일월오악도 병풍을 설치하였다.

건물 계단 앞에는 신하들의 신분을 나타내는 24개의 품계석이 놓여 있다.

 

명정전 남측의 문정전과 주변 행각은 1983년부터 3년간에 걸친 복원공사로 대부분

복원하였고일제 때 격하되었던 창경원의 명칭을 창경궁으로 환원하였다.

창경궁의 명정전은 임진왜란 이후에 다시 지은 건물이지만, 조선 전기 건축 양식의 특징을

잘 계승하고 있는 건물로 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함인정

원래 연산군때 지은 인양전이 있던 터이나 왜란때 타버렸다.

인조가 인조반정후 인왕산밑에 인경궁에서 헐어다가 옮겨지었다.

함인정 부근은 마당이 넓어 임금이 신하들을 접견하는 장소로 많이 사용되었다.

 

 

 

 

 

 

 

 

 

 

 

환경전

환경전은 침전임에도 불구하고 용마루가 있다. 또한 중종이 환경전에서 훙서하였으며,

세자 시절의 광해군, 광해군의 세자 이지, 소현세자, 등이 거처하였다가 소현세자 사후

1652년(효종 3년) 14세까지 숭선군이 여기서 거처하였다.

 

경춘전

경춘전
원래 대비전으로 쓰인 건물이다. 

인수대비가 거처하던 곳으로 혜경궁 홍씨가 거쳐하던 곳이기도 하다. 

정조, 헌종이 이 곳에서 태어났다.

또한,인수대비와 인현왕후, 혜경궁 홍씨가 승하한 곳이다.

 

창경궁 통명전(昌慶宮通明殿)

창경궁 안에 있는 내전의 연회 장소로도 사용했던 곳이다. 조선 성종 15(1484) 처음 지었던 건물이

임진왜란의 피해로 불에 타 버려 광해군 때 고쳐 지었으나 정조 14(1790) 다시 화재로 소실되었다.

지금 있는 건물은 순조 34(1834) 창경궁을 고쳐 세울 때 같이 지은 것이다

 

건물 왼쪽으로 돌난간을 만들어 놓은 연못과 둥근 화강석을 두른 샘, 건물 뒤쪽에 꾸민 정원이

한층 더 정감 어린 풍경을 만들고 있다. 궁궐 안 내전 중 가장 큰 건물로 옛 격식을

잘 보존하고 있으며 19세기 건축 양식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되는 문화재이다

보물 818

 

금호여중생들의 밝은 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