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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팩타클한 트레킹코스 "뚜르 드 몽블랑" 소개.

관주 觀周 2016. 8. 28. 07:03

느림보 산악회에서 매년 시행되고있는 해외원정산행이 2017년에는 몽블랑 160Km 트래킹으로 정했다고 한다.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3개국에 걸쳐 각 나라의 독특하고 고유한 전통문화와 자연을 접할 수 있으며 초원지대에서 빙하지대까지 지루할 틈 없는 다채로운 풍경을 제공해 주는 세계에서 가장 클래식하고 스펙타클한 트레킹 코스 이다. 벌써부터 가슴설래게 만드는 뚜르 두 몽블랑 일주 트래킹코스... 고희를 넘긴 나이에 산에서만 10박이상을 해야하고 거리만도 160Km. 단단히 마음먹고 지금부터 준비를 해야할것같아서 현지자료를 인터넷에서 수집, 편집하여 몇회에 거쳐 올려보려고 한다.     -관주생각-








뚜르 드 몽블랑 소개

 

알프스에는 유명하고 아름다운 트레킹 루트가 많이 있지만 현지의 모든 가이드들누구나 할 것 없이 몽불랑 일주 코스(뚜르 두몽불랑,T M B)를 알프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트레킹 루트로 첫손 꼽고 있다. 트레킹내내 마다 멋진 장관이 펼쳐져 있으며, 이러한 웅장한 알프스의 경관뿐만 아니라 알프스 고유의 전통문화도 함께 접할 수 있는 트레킹 코스이다

 

해발 1,000m에서 2,700m 사이에 형성된 트레킹 루트를 따라 숙박이 가능한 산장을 표시해 놓은 160km의 길을 따라 걷게 되는 몽불랑 일주 트레킹은 각 길목마다 잘 정비된 이정표가 세워져 있고, 중간중간에 'TMB'라는 표식이 길을 안내하고 있다. 트레킹 적기는 6월중순부터~9월중순 사이 이고, 뜨르드 몽블랑 총거리는 160Km, 능력에 따라 10박이나  13 일정이면 완주할 수 있다.

 

샤모니 몽블랑(Chamonix Mont-Blanc)은 프랑스 동남쪽 스위스·이탈리아 국경과 맞닿아 있는 작은 산골마을이다. 해발 1,036m의 계곡에 1만명 남짓한 주민이 모여 산다. 이 작은 마을의 남쪽에는 서유럽의 최고봉, 몽블랑이 있다. '하얀 산'이라는 뜻의 몽블랑 덕분에 샤모니는 근대 알피니즘(등반)의 성지가 됐다. 1786년 처음으로 몽블랑 정상에 사람이 오른 뒤로, 수많은 산악인들이 샤모니를 찾아와 산과 인생을 논했다.

 

200여년이 흐른 지금도 매년 여름이면 180만명이 넘는 외지 사람들이 샤모니를 찾는다. 예전 모험가들처럼 결코 몽블랑을 밟기 위해서는 아니다. 샤모니에는 몽블랑 외에도 총연장 350에 달하는천혜의 트레킹 코스가 있다. 뚜르드 몽블랑 트레킹 코스는 등반객들을 위한 일률적인 '정답'은 없는 곳으로서 어느 한 곳 NOTRAIL(가지 말라)구간이 없이 자유롭게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 총연장 350에 이르는 길이 어찌 한 길이겠는가. 하지만 곳곳에 표지판이 있어 방향만 잡으면 길 잃을 염려는 없다.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3개국에 걸쳐 각 나라의 독특하고 고유한 전통문화와 자연을 접할 수 있으며 초원지대에서 빙하지대까지 지루할 틈 없는 다채로운 풍경을 제공해 주는 세계에서 가장 클래식하고 스펙타클한 트레킹 코스 이다.

 

샤모니에는 세계에서 유명한 등산학교가 개설중이고, 몽불랑 등정때 이곳 등산학교의 유능한 가이드를 구하여 안전하게 등정할수 있도록 도와주지만, 무척 비싼 가이드 비용을 지불해야만 한다. 샤모니에는 산악박물관이 있어 그 옛날 몽불랑을 등정하기 위해 사용했던 허술한 방한복, 지팡이, 가죽등산화, 크레바스를 건널때 사용하는 다리 로프등 보잘것 없는 장비로 몽블랑 첫 등정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두남자는 미셸 가브리엘 파가드(1975-1827) 오라 자크 발마(1762-1834)의 유품들도 볼 수 있다. 파가드는 샤모니에 정착한 첫 의사이고, 발마는 샤모니의 수정 채굴꾼이었다.스위스의 자연과학자 소쉬르의 몽블랑 정상 정복의 상금과 함께 1786년 알프싀 최고봉 몽블랑(4807m)이 마친내 인간의 발갈을 허락하는 순간이었다. 샤모니 광장 한 복판에는 파가드와 발마, 소쉬르의 동상이 몽블랑을 향하여 서있다.

 

알프스는 일기의 급변과 천둥, 벼락이 잦기 때문에 벼락이 치는것을 대비하여 많은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있다  

 

트레커들이 가장 높이 오를 있는 곳은 에귀드 미디(3,800m)까지인데 지금은 50유로(한화 85,000)를 지불하고 케블카를 이용하여 쉽게 몽블랑 정상 가까이 갈수 있지만 그 옛날 산악인들은 케블카는 물론 그옆에 산장도 없었기에 설사면과, 깍아지는 절벽과 일기의 급변화에, 공포나 미혹의 대상이던 산의 문을 두드리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산악 박물관 옆 오래된 성당부근에는, 지구온난화를 알프스를 통해, 만년설의 녹아내림을 100년전과 요즘의 벌거벗음을 안타깝게 촬영하여 비교한 비디오가 상시 발영된다.  2/3는 녹아버린것 같은 알프스의 처철함에 현대문명의 이기심과 인간이 저질러버린 편리함에 의파괴되는 자연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항공편

인천공항에서 파리를 거쳐 제네바 공항으로 가는 것이 일반적이나 인천-모스크바-제네바, 인천-모스크바-취리히, 인천-카타르-제네바, 인천-북경-제네바 등 매우 다양한 루트가 있다인천에서 스위스 취리히까지의 비행시간은 11시간50분이 소요되며 8시간의 시차가 있지만 유럽의 썸머타임 실시로 우리나라보다 7시간이 늦다.

 

물가

스위스는 고물가에 유로화 상승으로, 하루 객실료가 235유로(한화 약350,000) 간단한 맥주한잔, 스테이크 셀러드에 28유로(한화 약42,000)로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이다. 그러나 프랑스 샤모니 지역은 스위스 취리히 보다는 물가가 저렴한 편이고, 세계 등산 유명브랜드 상점들의 집합소이기도 하다. 트레커들이 편리하게 이용할수 있는 수퍼마켓이나 품질좋은 등산장비 대여점들이 많이 모여있다.

 

숙박·교통

샤모니에는 60여개의 호텔이 있다. 2~3성급 호텔은 몇대째 내려오는 가업인 경우가 많은데, 프랑스 호텔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그리 넓진 않지만 정갈하다. 모든 호텔은 머무는 기간 동안 샤모니의 대중교통(버스·기차)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교통카드를 발급한다.

 

케이블카

케이블카 이용도 카드 한장으로 해결할 수 있다. 1일 자유이용권은 50유로, 3일짜리는 70유로다. 각 트레킹 코스로 향할 때 케이블카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미리 끊어두면 유용하다.

 

안내소

시청 광장의 성당 왼편에 여행자 안내소(Office de Tourisme)가 있다. 간편한 지도와 여행 책자를 무료로 받을 수 있다. 모든 트레킹 코스가 담긴 상세 지도는 4유로에 판다. 사전에 이곳에 숙박 문의를 하면 여행 예산에 맞는 숙박업소를 직접 알아봐 준다. 트레킹이나 고산 등반을 할 여행자라면 성당 오른편 고산등반 안내소(Office de Haute Montagne)를 방문하는 게 좋다. 직원 4명은 모두 등반 전문가로, 여행자에게 맞는 등반 코스와 그날의 날씨 정보를 알려준다.

 

식당

대부분 프랑스 전통 레스토랑이다. 향내 깊은 치즈와 사부아(Savoie) 지역 포도주는 여행의 피로를 잊기 딱 좋다. 한국 음식이 그립다면 에귀유 뒤 미디로 가는 케이블카 탑승장 앞 '산마루'를 찾아보자. 20년 가까이 샤모니에 거주하고 있는 조문행(51)씨가 주인이다. 유스호스텔도 운영한다.

 

가이드 해발 2000m 부근의 '그랑 발콩' 이상은 길이 복잡하므로 가이드를 쓰는 게 좋다. 일반 트레킹 가이드 비용은 하루에 187유로이며, 가이드 1인당 12명까지 이용할 수 있다. 고산 등반 가이드는 1280유로로 제법 비싸다..

 

 

 



몽블랑 등반 이야기

 

1741년 두명의 영국인이 몽블랑 북측 기슭에 위치한 산간 마을 샤모니에 우연히 찾아 온다. 한 사람은 리챠드 포코크로서 이집트, 아랍, 아시아, 터키 기행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고, 다른 한 사람은 군인인 24세의 윈드햄이었다. 이들 두 영국인은 몇몇 친구들과 함께 제네바에서 멀리 바라다 보이는 이 몽블랑 산군을 여행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당시 샤모니 계곡은 거의 사람들의 왕래가 없는 한적한 곳이었기에 위험한 곳으로 평판이 나 있었다. 즉 이 계곡의 봉우리들은 인간들이 근접할 수 없는 원시림이 덮인 저주 받은 곳으로 생각되었다.

 

마침내 장비를 단단히 갖춘 두 영국인은 제나바를 떠났다. 떠난 지 3일째 되던 날 이들은 아름다운 한 계곡에 도착하는데, 그곳 수도원 원장의 환대를 받게 된다. 이 노 수도사는 젊은이들이 더 이상 높은 산을 여행하는 것을 만류한다. 이는 후에 몽땅베르를 최초로 오르게 되는 이 젊은 탐험가들을 잘 몰랐기 때문이다. 이 수도원 사람들은 그 첫 등정이 가져오게 될 영향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후 1760, 한 젊은 제네바의 자연 과학자 드 소쒸르가 샤모니의 빙하를 관찰하기 위해 혼자 도보로 출발했다. 그의 나이 20. 그는 도착하자마자 몽땅베르로 올라갔고, 거기서 몽블랑을 자세히 관찰하고자 브레방 정상까지 올랐다. 그는 곧 몽블랑에 과학적인 관심을 가지고서 이 높은 봉우리를 오르는 등반로를 찾는 사람에게 큰 사례를 하리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어떠한 시도도 성공하지 못 한 채 26년이 흐른다.

 

마침내 1786년 이 봉우리 정상에 첫 발을 내디딘 이들은 미셀 가브리엘 파까드와 쟈끄 발마였다. 파까드는 이 지역에 정착한 첫 번째 의사로서 자연과학에 큰 관심을 보여 일찍이 여러 산들을 두루 돌아다닌 이였다. 그는 쟈끄 발마의 부인뿐만 아니라 그의 딸도 치료하게 되는데, 후에 있을 유명한 몽블랑 등정 10년 후에 그의 여동생과 결혼한다. 한편 수정 채집가인 쟈끄 발마는 산에 대한 타고난 감각을 지닌 사람으로서 과묵하고 독단적이었던 그는 다른 산악 가이드들로부터 경쟁 상대자로서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어쨌든 그들의 공통적인 커다란 장애를 극복해 보려는 의욕이 파까드와 발마의 몽블랑 등정을 부채질한 것이다. 그들은 87일 오후에 샤모니를 출발하여 몽따뉴 드 라 꼬뜨 정상에서 야영하고서 다음날 새벽 4시에 등반을 시작하여 1823분에 이 두 사람은 마침내 정상에 섰다. 그들의 모든 과정은 샤모니에서 망원경으로 관찰되었다. 영원히 기록될 이 날이 알피니즘의 기원이 되었던 것이다. 이로서 이 유럽 최고봉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평화스럽던 샤모니 마을에도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샤모니 몽블랑 시내 전경.



샤모니 몽블랑 시내 전경.



 

샤모니 몽블랑 시내 소개

 

알피니즘의 발상지이자 몽블랑 산군의 등반기지인 샤모니의 실제 이름, 즉 행정구역명은 샤모니 몽블랑(Chamonix Mont Blanc)이다. 샤모니 몽블랑 역을 기점으로 시내를 둘러보면, 역에서 번화가쪽으로 뻗어 있는 길이 미셀 끄로 거리이다. 전통적인 산악도시답게 시내 곳곳에 산악인의 이름을 뿥이고 있다. 미셀 끄로는 알프스 등산의 황금시대에 활약한 샤모니 출신의 등산가이드로서 1865년 마터호른 초등정 직후 자일이 끊어져 빗어진 비극의 희생자이다.

 

식당과 선물가게, 환전소 등이 있는 이 거리를 곧장 내려가면 약 100미터 거리의 왼쪽 모서리에 작은 목조건물이 하나있다. 여기가 프랑스 산악회 샤모니 지부로서 몽블랑 산군을 등반하러 오는 모든 회원들의 편의를 제공한다. 프랑스 산악회에서도 가이드 조합처럼 여름철 등산학교 등 여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 지부에서는 몽블랑 지역의 회원관리와 등반정보를 제공하고 있는데, 프랑스 산악회 회원뿐만 아니라 일반여행자들과 외국인들도 일정액의 회비만 납부하면 곧바로 회원증과 함께 자격을 부여하는데, 이 기간 동안 산장이나 대피소 사용시에 반액 정도의 할인 또는 면제받을 수 있다. 덧붙여 가격이 비싼 산장이용료를 할인받기 위해선 UIAA 가맹단체인 한국산악회나 대한산악연맹의 회원증을 발급받아 가는 것도 한 방법이다. 거기서 그대로 시내 한복판으로 들어서면 오른쪽에 산악박물관이 위치해 있다. 알피니즘의 역사를 한눈에 조망해 볼 수 있는 곳으로서 초등시대의 등산장비와 그들이 사용했던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어 아르브강을 건너 큰 시계탑에 이른다. 여기서 오른쪽은 발로 거리, 왼쪽은 파까르 거리이다. 즉 이 3개 거리가 샤모니의 중심가를 이룬다고 볼 수 있다. 레스토랑 및 각종 기념품 가게가 즐비한 발로 거리를 걸어가면 왼편에 큰 수퍼마켓이 위치해 있다. 여기서 조금 더 걸어가면 4거리가 나오는데, 오른쪽으로 모퉁이를 돌아가면 몽블랑 거리이다. 거리 왼편에 커다란 아케이드 상점가가 있는데, 여기에도 수퍼마켓이 있다. 이 아케이드 상점가 옆으로 흐르는 아르브강의 다리 하나를 건너면 주차장화된 넓은 광장이 나온다.

 

여기가 몽블랑 광장인데, 매주 토요일 오전마다 시장이 형성된다. 이 토요장엔 이 지방 산골에서 생산되는 각종 치즈나 야채류, 목조각 등 토산품 뿐만 아니라 의류나 여러 가지 골동품과 도서들도 판매되는데, 잘만 고르면 의외로 싸게 귀한 등산책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북적대는 시장거리를 둘러본 다음, 빼놓을 수 없는 먹거리가 바로 통닭 바베큐와 피자로서 싼 가격에 맛도 일품이다. 이 몽블랑 광장 뒷 편에 우뚝 솟은 건물이 바로 ENSA(국립스키등산학교).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최고수준의 이 학교건물 주변엔 각종 스포츠 시설들이 밀집해 있다. 5년 정도 이 학교에서 스키와 등산에 관한 이론과 실기를 익힌 다음, 국가시험에 합격한 사람들만 스키 인스트럭트나 등반 가이드 자격이 부여되는 국립 가이드 양성 학교이다. 또한 이 학교 교과엔 외국인을 위한 여러 특별 프로그램도 개설하고 있다.

 

ENSA를 좌측에 두면서 북서쪽으로 난 큰 길을 따라 10분 즈음 가다 우측으로 돌아 철길을 건너면 '샤모니아드 볼랑'이란 샤렛이 보인다. 과거엔 띠띠네 집으로 더잘 알려진 이곳은 70년대 고 유재원씨가 거처하던 곳이기도 하다. 도미토리형 숙박소인 이 목조건물은 요즘도 한국인들이 자주 이용하는 곳으로서 이 숙소 로비나 식당에 한국등반대들의 흔적들이 많이 남아있다. 3층 다락방의 하루 이용료가 52FF이며 2층 객실 이용료는 65FF(99년 여름 기준)이다. 또한 샤모니아드 볼랑에서 오육십미터 떨어진 지점에도 이와 유사한 숙소가 있다.

 

한편 파까르 거리를 10여 미터 따라 걷다가 발마 광장에서 오른쪽으로 접어들면 성 미셸 교회로 이어진 거리가 나온다. 이 거리 중간 지점에 샤모니 시청이 위치해 있다. 이 시청에 인접한 건물 다음이 교회로서 아주 아담한 모습을 하고 있다. 12세기 초에 작은 예배당으로 세워진 이 교회는 1522년의 화재 이후 여러번 개축되어 1758년에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 교회 오른편의 3층 건물은 산의 집(Maison de la Montagne)으로서 1층은 가이드 조합이며, 3층엔 각종 등반자료들이 비치되어 몽블랑 산군을 등반하러 오는 거의 대부분의 산악인들이 이곳에서 정보를 수집, 나누어 갖고 있다. 즉 이 지역의 침봉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의 루트와 등급, 그리고 진입방법 등을 알수 있다. 여기뿐만 아니라 이 건물 앞의 게시판에는 일주일치의 일기예보가 매일 게시되고 있다.

 

그리고 이 '산의 집' 앞 도로 건너편엔 관광 안내소가 있어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여기서 산악구조 헬기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이 관광 안내소 앞의 버스터미널은 샤모니 주변의 레 우쉬(Les Houches)나 아르쟝띠에 그리고 르 뚜르(Le Tour) 같은 마을로의 정기버스편이 약 30한 시간 간격으로 운행되고 있다. 그리고 관광 안내소와 교회 사이의 길을 약 10분 올라가면 브레방 전망대로 오르는 케이블카 역이 나타난다.

 

한편 안시나 쩨르마트, 제내바와 같은 장거리 버스 편은 샤모니 몽블랑 기차역 전면의 조그마한 사무실에서 알아보면 된다. 그리고 이 기차역 위로 가설된 계단을 올라 건너면 몽땅베르행 등산기차역이 나타난다. 메르데 빙하 쪽으로 가기 위해선 이 기차역을 이용하게 된다. 이 등산열차 역사를 좌측으로 돌아 건너면 샤모니 공동묘지가 있다. 여기엔 마터호른 초등자 에드워드 윔퍼나 가스통 레뷰파, 리오넬 테레이 같은 알피니즘의 발전에 주된 역할을 했던 유명 등산가과 수많은 알피니스트들이 잠들고 있다. 이 묘지 상단부에 한적하게 따로 형성되어 있는 곳에 한국인으로서 이 몽블랑 산군에서 활발한 등산활동을 했던 고 유재원씨도 잠들어 있다.

 

그리고 발마 광장 한편에 우체국 건물이 위치해 있으며, 파카르 거리를 따라 식당과 영화관 서점 및 수퍼마켓, 그리고 등산장비점 등이 밀집해 있다. 곧 이 거리를 좌측으로 돌아 철길을 건너고 아르브강도 건너면 샤모니 쉬드, 즉 샤모니 남쪽 광장 상가가 나타난다.

 

이 곳을 지나면 에귀디 미디행 케이블카역 광장이 나타난다. 역 광장엔 각국 국기가 게양되어 있다. 여름 성수기일땐 많은 사람들로 붐비기에 아침 일찍 나서는게 좋을 것이다. 그리고 이 샤모니 남쪽 광장에서도 매주 수요일에 장이 서는데, 몽블랑 광장의 토요장보단 규모가 적지만 오히려 각종 골동품이나 우표, 서적 등은 보다 다양하게 거래되고 있다. 또한 이 광장 중간부분에는 한국인(조문행)이 경영하는 등산의류 및 기념품 가게가 있는데, 샤모니에 방문하는 많은 이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캠핑장은 샤모니 주변에 대여섯 군데 있는데, 그중에 시설도 좋고 넓은 곳은 보송 빙하와 가까운 곳과 레 프라 마을 쪽으로 20분 거리에 위치한 레 로시에 캠핑장이다. 그러나 어느 곳이든 현대식 샤워시설 등의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여름시즌에 샤모니에 장기 체류하는 이들에겐 캠핑장 이용도 권할만 하다.

 

한편 샤모니 시내에서 남쪽으로 약 15분 걸어가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난이도의 자연암장인 가양 암장이 위치해 있다. 이곳 잔디밭에선 매년 여름 세계 규모의 볼더링 대회가 개최되고, 가이드 축제의 구조시범 등도 열린다. 그리고 가양암장의 주변 숲속엔 철봉 등 각종 운동기구가 설치되어 있으며, 휴식공간을 충분히 제공하고 있다.

 

또한 여기서 멀지 않은 거리의 보송빙하는 한여름의 관광객들에겐 몽땅베르의 메르데 빙하 얼음궁전과 더불어 더할 나위없는 시원함을 제공하고 있다.

 

한편 샤모니에서 케이블카로 40분이면 도달하는 에귀디 미디 전망대는 몽블랑을 한눈에 조망해 볼 수 있는 샤모니 관광에 있어 핵심이다. 그러나 단번에 2,000미터 이상의 고도를 높이기에 건강에 이상이 있는 이들은 조심할 필요가 있다. 샤모니의 큰 행사로는 매년 815일 가이드 축제가 있다. 여러 가지 구조시범뿐만 아니라 불꽃놀이나 고전의상 가장행렬 등이 펼쳐진다. 이뿐만 아니라 매년 세계수준의 암벽대회라든지 각종 산악문화행사가 열린다.

 

이렇듯 수많은 침봉들과 어우러진 만년설 아래에 위치한 샤모니는 아르쟝띠에와 우쉬 같은 주변 마을과 연계되어 알프스 최대의 레져 휴양도시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알프스의 문화적 의미

 

늘 자연의 절대적인 힘이 지배적이었던, 지중해와 북 유럽 사이에 위치한 이 거대한 알프스 산맥은 오랫동안 아주 고립적인 다양한 산악문화권들을 형성해 왔다. 구석기 시대 때부터 방랑생활을 하는 사냥꾼들이 알프스 고지대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로마인들은 자신들의 지배력과 상업을 확충시키기 위해 고지대에 길을 뚫었으며, 많은 통로들은 여전히 이용되고 있다. 또한 상인으로서의 켈트족들도 위험한 고지대의 고개들을 넘나들면서 여러 상업로들을 만들어 냈다. 수세기 동안 그러한 지역은 한니발, 세사 아우구스투스, 아티라 훈, 챠레마그네와 나폴레옹의 군대들이 넘나들었다.

 

하지만 그러한 고지대의 고개들 사이에 웅장하게 솟아 있는 알파인 봉우리들은 1700년대까지 용과 악마들의 거처로 여겨져 왔다. 기록에 의하면 수세기 동안 루세르네(Lucerne) 시의회는 악마 정신의 본가로 자자했던 피라투스(Pilatus) 산을 법령으로 오르지 못하게 금지시키기도 했다. 1680년에는 샤모니를 굽어보며 흐르는 몇몇 빙하들의 초자연적인 힘을 몰아내기 위해 안시(Annecy)의 주교를 샤모니에 초대하기도 했다. 자연히 이러한 전설과 자연적인 위협들이 인간으로 하여금 고산으로의 여행을 방해했던 것이다.

 

1700년대에 이르러서야 인간의 호기심이 지리학자와 식물학자들을 고지대로 유혹하여 고지대의 단절이 해소되기 시작했다. 고산지대의 전경을 흥미롭게 기술한 잰-쟉크 룻쇼와 19세기 낭만주의 시인들은 사람들을 부추겨 알프스로 향하게 했다. 프랑스인 미셜-가부리엘 파카드와 쟈크 발마에 의한 1786년의 몽블랑(서부 유럽의 최고봉) 등정은 등산의 개척시대를 선도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등산과 스키를 스포츠로 대중화시킨 이는 영국인들이었다. 1865년에 에드워드 윔퍼는 불가능하게만 여겨졌던 마터호른을 올랐으며, 1922년에 아놀드 런은 뮤렌(Murren)에서 스키 회전 활강 경기를 개최하기에 이르렀으며, 알프스의 산악도시들은 세계 최대의 동계 휴양지로 발전하게 되었다.

 

산비탈과 메마른 토지, 그리고 긴긴 겨울 등으로 인해 산간 주민들은 주로 가축을 길러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자연히 포도밭이나 과수원, 곡물농사 뿐만 아니라 낙농업과 제재업이 주 수입원을 이뤘다.

 

많은 지역에서 풍부한 산림은 아름다운 샤렛(가옥)을 짓고 종교적인 형상들과 인간들 삶에 유용한 건조물들을 조각하는데 이용되었다. 로마 시대 때부터 매년 봄과 가을에 가축들이 알프스 고지대를 드나들었다. 고대부터 고산 목초지로의 출발에 앞서 많은 가축들은 축복으로 신성시 되었으며, 그들이 돌아올 땐 방울과 야생화로 장식되었다.

 

오늘날 산골 경제의 주수입원은 관광산업이다. 알프스 전역의 휴양지와 건강 센터, 그리고 하이커들의 숙박업소들은 관광객들을 언제나 환영하고 있다. 하지만 각 지역의 전통양식들은 외부문화의 유입을 꺼리고 있다. 한 예로 얼마까지만 해도 알프스 최고의 산악도시 샤모니에 맥도날드가 아무리 개점하려 해도 하지 못한 일 등. 자신들만의 문화색이 짙은 각 지역들은 정치적인 문제 등은 염두에 두지 않고 그 자신들만의 독특한 장점들을 개발시키면서 뛰어난 관광문화권을 형성하고 있다.

 


 

 

알프스의 지형학적 의미

 

유럽 알프스 산맥은 동구권의 슬로베니아 주변국에서부터 오스트리아,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 프랑스 등과 지중해 해안까지 장장 1200km에 이르는 대 산맥으로서 넓이가 약 85,000 평방 마일의 초승달 모양으로 폭넓게 분포되어 있는 산군들의 집합체이다. 7천만년 전, 이 지역은 지구 표면의 두 충돌 지표면 사이에 놓인 해저였다.

 

이 석회암 바다 표면은 차츰 위로 뒤틀려 밀려 올려졌다. 몇몇 부분들은 고지대에 편마암과 화강암, 그리고 편암 층들을 노출시키며 각 부분들의 상단에서 겹쳐졌다. 빙하기에 거대한 계곡들을 채운 빙하들은 각 산봉우리들을 다양하게 조각해 놓았으며, U자 모양의 계곡과 호수들을 만들어 놓았다. 이렇게 뚜렷하게 형성된 고지대의 목초지들은 자연히 알프스라 불리게 되었다.

 

이 산악지대는 여전히 매년 1~2 밀리미터씩 상승하고 있다. 이 거대한 산맥에 형성되어 있는 1,200 개의 빙하들은 유럽 대륙의 주요 하천들의 원류가 되고 있다. 지질학적으로 알프스/아프리카 조산대의 서단에 위치한 이 알프스 산맥은 북유럽의 여러 나라들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거대한 활 형상을 하며 뻗어 있는데, 대체로 3개 권역으로 나누어 봄직 하다.

 

주로 동부 알프스, 중부 알프스, 서부 알프스로 나눌 수 있겠다. 동부 알프스는 슬로베니아의 최고봉 트리글라브(Triglav 2864m)가 속해 있는 쥴리안 알프스에서부터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 북부에 걸쳐 있으며, 인스부르크와 티롤 지방을 중심으로 하는 바바리안 알프스, 마르몰라다, 치베타, 트레 치메 디 라바레도, 랑코펠 등과 같은 거대한 바위벽들이 즐비한 돌로미테 산군과 짤스부르크 주변 산군 등으로 크게 나누고 있다. 이 밖에도 독일과 오스트리아 국경에 위치한 카이저 산군과 스위스와 독일 국경에 솟아 있는 베터슈타인 산군 등도 동부 알프스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중부 알프스는 일부 이탈리아 국경을 접하고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스위스 전역에 걸쳐 있는 셈인데, 스위스의 남동쪽 베르니나 산군에서부터, 중앙의 베르너 오버랜드 알프스, 그리고 서쪽의 발리스 알프스 등을 일컫고 있다. 베르니나 알프스는 론강의 상류 스위스의 동남쪽에 해당하는 지역에 형성되어 있는데, 이 산군 최고봉이 바로 피쯔 베르니나(Piz Bernina 4,049m)로서 4000미터 봉우리 중에 가장 동쪽에 홀로 솟아 있다. 이 베르니나 알프스엔 아름다운 엥가딘 계곡이 있는데, 아름다운 호수 옆에 형성된 국제적인 산악 휴양지 생 모리츠(St. Moritz)가 위치해 있다.

 

또한 베르너 오버랜드 알프스는 우리들에게 널리 알려진 아이거, 융프라우, 뮌히가 속해 있는 산군으로서 이 산군 최고봉 핀스터라르호른(Finsteraarhorn 4,273m)을 비롯하여 4000미터 급 봉우리가 9개 위치해 있다. 이러한 봉우리들의 주요 출발점인 인터라켄이나 그린델발트, 그리고 융프라우요흐 등은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국제적인 관광 명소이다.

 

한편 이 베르너 오버랜드 알프스 남쪽에는 스위스를 동서로 흐르는 론강이 있는데, 이 건너편에 위치한 산군이 바로 발리스 알프스이다. 이 발리스 알프스는 쩨르마트와 사스페(Saas Fee 1790m)를 중심으로 펼쳐진 바이스호른(Weisshorn 4506m), 당 블랑쉬(Dent Blanche 4357m), 마터호른(Matterhorn 4478m), 몬테 로자(Monte Rosa) 연봉과 돔(Dom 4545m)을 위시한 미차벨(Mischabel) 연봉이 위엄있게 자리하고 있다. 이 산군엔 4천 미터 이상 봉우리가 무려 32개나 위치해 있기에 알프스의 중심부임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서부 알프스는 알프스의 최고봉 몽블랑이 위치한 몽블랑 산군과 라 메이주, 에끄랑(Ecrin 4101m)을 거느린 도피네 알프스와 몽블랑의 남쪽 이태리 령에 속해 있는 그랑 파라디소(Grand Paradiso 4,061m) 산군 등이 있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그랑 파라디소 국립공원은 휘귀한 식물과 한때 멸종위기에 처했던 산양들을 보호하고 있다.

 

알프스 최고봉을 거느린 몽블랑 산군은 수많은 알파인 침봉들과 깊고 드넓은 빙하들로 인해 알프스에서 가장 히말라야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산군으로서 동부 알프스의 돌로미테 암봉이나 중부 알프스의 여느 산군들과는 다른 산행미를 맛볼 수 있게 해준다. 이 산군 남측 어귀엔 이태리의 꾸르마이에르와 북측엔 프랑스의 샤모니가 알프스 최대의 산악도시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몽블랑 산군 그림 보기>

 

이렇듯 알프스 산맥을 단지 몇 줄의 글로 요약하기란 불가능하며, 이제껏 우리 산악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등반 대상지가 무궁무진한 상태이다. 알프스는 분명 알피니즘의 발전단계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왔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기에 우리 산악인들의 관심이 좀더 요망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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