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그리기를 좋아했던 박현종 아오스딩 님이 2014년 11월 29일 서거[逝去] 하셨습니다.
학[鶴]과 같이 청초[靑草] 하고 고운 심성[心性]으로 살아오셨는데... 후배들에게 항상 귀감이 돼였던 선배님이 였었는데... 아직도 즐기면서 좋아하셨던 못다한 일들이 많을진데.... 귀여운 손주들의 재롱을 한참 받고 또 받아야할 나이인데.... 기어이 이렇게 먼저 먼 길을 떠나셨습니다.
갑작스런 비보에 할 말을 잃어 멍하니 하늘을 바라볼 뿐 입니다 다시는 뵈올수 없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무너집니다
당신인들 이승에 깊은 정, 그리운 님, 모두 남겨 두고 떠나시는 발걸음이 어찌 가벼웠겠습니까 ?
후배로써, 생전에 더 자주 만나 뵙지 못 한 죄책감에 회한[悔恨]의 눈물을 떨굽니다
이제는 이승의 아픔, 고통 다 벗어 버리시고, 밤하늘에 고운별, 빛나는 별로 살아가시옵소서.
남은 그리움은 저 하늘, 아픔 없는 세상에서 무거운 짐 모두 내려놓으시고 편히 영면[永眠]하소서.
삼가 고인[故人]의 명복[冥福]을 빏니다.
2014. 12. 사우회 부회장 관주 김광일.
고 박현종 아오스딩 장례화보.
-. 일시 : 2014. 12. 01
-. 장소 : 절두산 성지.
1866년 2월 프랑스 군함이 천주교 탄암을 문제 삼아 한강을 거슬러 서강까지 진입하였다.
이에 격분한 대원군은 수많은 천주교인들을 잠두봉에서 목을 베어참수케 한다.
그 뒤로 머리를 잘랐다하여 절두산(切頭山)이라는 지명을 얻게 되었다.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병인(1866년) 순교100주년을 기념하여 1967년 10월 순교 기념관을 개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