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사우회

군번 62번 김종면 이사님과 환담.

관주 觀周 2014. 12. 11. 22:01

 

 

군번 62번 김종면 이사님과 환담.

-. 일시 : 2014.  12. 11.(목요일)
-. 장소 : 경기 성남시 분당구 구미로 서울시니어타.
-. 인원 : 김종면 전 KBS기술이사. 정근춘 사우회 회장.

김광일 사우회 부회장. 정석현 사우회 이사 4명.

 

김종면 예비역 육군 준장(1923년생)
육군본부 정보국장(1951), 특무부대장(1951), 육군 준장 예편(1961), 서울신문 전무이사(1974),

한국방송공사 기술이사(1979),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위원(1981)을 역임하셨으며,
주요 상훈으로는 충무무공훈장(1950), 미국공로훈장(1952), 을지무공훈장(1952),

자유중국영수경성훈장(1979), 국민훈장 동백장(1988), 대통령표창(1976) 등이있다.

 

1979년부터 80년까지 약 2년동안 KBS기술이사로 재임중 "내새끼 내새끼" 하면서 근무하셨던

지난날의 추억들을 자료화면과 함께 담소를 나누면서 잠시나마 즐거운 시간을 갖고 왔습니다.

금년 92세로 KBS사우회 회원중 2번째로 연세가 많으신 회원이기도 합니다.

김장군은 일본중앙대학을 졸업한 뒤 1945년 말 스물셋 나이에 학병으로 군사영어

학교에 들어갔다. 군영은 미군정이 건군에 필요한 간부 양성을 위해 설립한 곳으로

1946년 5월 1일 서울 태릉에 문을 연 국방경비사관학교의모체이기도 하다.


당시 김장군과 함께 소위 계급장을 단 동기생은 모두 110명. 이들은 임관 직후 전국으로 흩어져

초기 9개 연대를 창설하는 데주도적역할을 했다. 김장군은 대한민국 군번 62번이다.  

 

6·25전쟁 당시 김장군의 계급은 대령이었다. 부대창설이 거듭되면서 1년에두 번씩 진급하기도 했다고.

하지만 그이면에는 맨손으로 나라를 지켜야 했던 지휘관의 피나는 노력과 희생이 있었다.

김종면 장군은“6·25전쟁 때 한국군은 장갑차 3대, 지프8대로 기갑연대를 꾸려 전투를

벌일 정도로 열악했어. 탱크로 밀고 내려오는 적을 아군이 육탄전으로 막아 냈지.

그리고 미군과 유엔군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의 우리는 있을 수 없었을 거야.”라고 말하고 있다.

창군동우회는 해방 직후 서울 서대문감리교신학교 자리에 세워진 군사영어학교 출신 간부들의모임이다.

1945년 12월 5일 문을 연 군사영어학교의 초대교장은 미군 리스 소령,

부교장은 만주군군의관 중좌 출신원용덕이 임명됐다. 군사영어학교가 배출한 졸업생은 모두110명.

대한민국 군번 1번부터 110번을 부여받아 장교로 임관되였으며 김종면 이사님은 군번 62번이였다.

이들은 국군의 창설과 발전에 큰 족적을 남긴 한국군사의 역사적 인물들이다.
국군창설의 주역인 이들 군사영어학교 출신 창군동우회원은 현재 백선엽 전 육군참모총장,

강영훈 전 국무총리, 김계원 전 대통령 비서실장, 김종면 전 KBS기술이사 등 9명 만이 국내에 생존해있다.

 

 

 

 

 

<< 자료 화면 >>

사진은 지난 2011년 1월 14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뮤지엄홀 VIP룸에서

열린 창군의 날 행사 사진 창군동우회 원로들이 기념촬영 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황헌친, 백선엽, 김계원, 김종면 장군. 뒷줄 왼쪽 둘째가 향군회장 박세환씨.

 

2013년 '창군동우회' 신년회 기념촬영

왼쪽부터 황헌친(육 준장, 1군사령부 참모장)장군, 김종면(육 준장, 특무부대장)장군,

백선엽(육 대장, 합참의장)장군, 박세환 향군회장, 강영훈 (육 중장, 국무총리)장군.

원본이 가지런히 보관되여 있는곳 http://blog.daum.net/afakim/13715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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