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행

05-13 영주의 부석사

관주 觀周 2012. 5. 15. 08:21

 

 

 

 

영주의 부석사[浮石寺].

 

 

-. 촬영일 : 2012. 5. 13. [일]

-. 장소 : 경북 영주시 부석면 봉황산 부석사 [浮石寺]

-. 카메라 : Canon EOS 5D Mark II, Canon EOS 550D

-. 렌즈 : Canon EF 24-105mm f/4L IS USM, Canon EF 16-35mm f/2.8L II USM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 화엄종의 종조인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우리나라 화엄사상의 발원지인 화엄종의

수사찰이다. 부석사란 이름은 무량수전 서쪽에 있는 큰 바위가 아래의 바위와 서로 붙지 않고 떠 있는데서 유래했다고 하며,

문화재로는 무량수전(국보 제18호), 무량수전앞 석등(국보 제17호), 조사당(국보 제19호), 소조여래좌상(국보 제45호),

조사당벽화(국보46호), 석조여래좌상(보물 제220호), 삼층석탑(보물 제249호) 등이 있다.


 

GPS로 실시간 기록한 데이터로 구글 항공지도에 표시한 노랑 실선이 내가 걸어서 답사한 코스를 나타내고 있다.

 

 

부석사의 야경.

 

 

 

▲ 당간지주 (보물 제255호)
부석사 창건 당시 세워진 신라시대의 석조 유물이다. 1300여년전의 이 당간지주에는 화엄종찰을 알리는 깃대와

깃발이 꽂혀 있었겠지만 지금은 한쌍의 돌기둥만이 남아 있다.당간지주는 일주문을 지나 천왕문에 다다르기 전

왼편 중턱에 우뚝서 있으며, 그 키가 4.8m 이다.

 

 

사찰을 보려면 먼저 건물들이 놓인 터와 그 주변의 산세를 살펴보는 게 순서이다. 놓일 자리에 따라 건물의 조형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선조들은 국(局)이 넓은 땅에서는 건물을 비교적 넓게 배치하되 높은 건물을 정점으로 조화를 이루도록 하였으며 국이 좁고 가파른 땅에서는

높은 석축과 건물을 잘 이용하여 짜임새 있게 공간 배치를 하였다. 부석사의 경우는 물론 후자에 속한다. 부석사가 위치한 곳은 봉황산 중턱이다.

 

 


백두산에서 시작한 산줄기가 태백산에서 멈추고 방향을 바꾸어 서남쪽으로 비스듬히 달려 이룬 것이 소백산맥이다.

태백산에서 뻗은 줄기가 구룡산, 옥석산, 선달산으로 솟구치다가 소백산으로 이어져 형제봉, 국망봉, 비로봉, 연화봉을 이루었다.

 

 

 

부석사가 위치한 봉황산은 선달산에서 다시 서남쪽으로 뻗은 줄기에 위치한다. 동쪽으로는 문수산, 남쪽으로는 학가산의 맥이

휘어들고 서쪽으로 소백산맥이 휘어돌아 거대한 울타리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위치하여 뭇 산의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봉황산을

향하여 읍하고 있는 형상이다. 풍수지리상으로도 뛰어난 길지에 속한다.

 

 

 

▲ 부석사에는 2개의 누각, 안양루와 범종각.

문의 성격을 겸한 안양루가 석축 위에 작고 날아갈 듯하게 지은 누각이라면 대석축단과 안양루 석축으로

구분되는 공간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범종각은 지반에 견고하게 버티고 선 안정감 있는 건물이다.

특히 이 범종각은 그 건물의 방향이 여느 건물과는 달리 측면으로 앉아있다.

 

 

 

건물의 지붕은 한쪽은 맞배지붕을 하고 있고 다른 한쪽은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데 자세히 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쉽다. 팔작지붕을 한 쪽이 정면을

향하고 있고 맞배지붕이 뒤쪽을 향하고 있는데 무량수전 앞에서 바라보면 왜 목수가 지붕을 그리했는지를 알수 있으며 그 지혜에 절로 감탄이 난다.

 

 

 

부석사가 소백산맥을 향하여 날아갈 듯이 앉아있는데 범종각이 정면을 향하고 있으면 건물이 전반적으로 무거워보인다.

따라서 범종각을 옆으로 앉혀놓고 뒷쪽을 맞배로 처리하여 건물이 전반적으로 비상하는 느낌을 주고 답답해 보이지 않아 좋다.

 

 

 

 

 

 

 

 

 

 

 

 

 

 

 

 

 

 

 

 

 

 

 

 

 

 

 

 

 

 

 

 

 

 

 

 

 

 

 

 

 

 

 

 

 

 

 

무량수전 앞 석등 [국보 제17호]

4각 바닥 돌은 옆면에 무늬를 새겨 꾸몄으며, 그 위의 아래받침돌은 큼직한 연꽃 조각을 얹어 가운데기둥을 받치고 있다.

전형적인 8각 기둥형태인 이 기둥은 굵기나 높이에서 아름다운 비례를 보이는데, 위로는 연꽃무늬를 조각해 놓은 윗받침돌을

얹어놓았다. 8각의 화사석은 불빛이 퍼져 나오도록 4개의 창을 두었고, 나머지 4면에는 세련된 모습의 보살상을 새겨놓았다.

지붕돌도 역시 8각인데, 모서리 끝이 가볍게 들려있어 경쾌해 보인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얹었던 받침돌만이 남아있다.
통일신라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석등으로, 비례의 조화가 아름답고, 화려하면서도 단아한 멋을 지니고 있다.

특히, 화사석 4면에 새겨진 보살상 조각의 정교함은 이 석등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 안양루는 무량수전 앞마당 끝에 놓인 누각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로 무량수전과 함께 이 영역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 건물에는 위쪽과 아래쪽에 달린 편액이 서로 다르다. 난간 아랫부분에 걸린 편액은 '안양문'이라 되어 있고

위층 마당 쪽에는 '안양루'라고 씌어 있다. 하나의 건물에 누각과 문이라는 2중의 기능을 부여한 것이다.

 

 

 

 

 

 

 

 

 

 

 

'안양'은 극락이므로 안양문은 극락 세계에 이르는 입구를 상징한다.
따라서 극락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지나면 바로 극락인 무량수전이 위치한 구조로 되어있는 것이다.

 

 

안양루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엎드려 모여 있는 경내 여러 건물들의 지붕과 멀리 펼쳐진 소백의 연봉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스라이 보이는 소백산맥의 산과 들이 마치 정원이라도 되듯 외부 공간은 확장되어 다가온다. 부석사 전체에서 가장 뛰어난

경관이다. 그래서 예부터 많은 문인들이 안양루에서 바라보는 소백의 장관을 시문으로 남겼고 그 현판들이 누각 내부에 걸려 있다

 

 

 

 

 

 

 

 

 

 

 

 

 

 

 

 

 

 

 

▶ 무량수전 (국보 제18호)
부석사의 주불전으로 아미타여래를 모신 전각이다. 아미타여래는 끝없는 지혜와 무한한 생명을 지녔으므로
무량수불로도

불리는데 '무량수'라는 말은 이를 의미하는 것이다. 무량수전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가운데 하나이다.
역사적으로 인정되기로는 안동 봉정사 극락전이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로 알려져 있지만 건물 규모나 구조 방식, 법식의 완성도라는

측면에서는 무량수전에 비하여 다소 떨어진다.그러므로 무량수전은 고대 불전 형식과 구조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기준이 되는 중요한 건물이다

 

 

 

무량수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인데 평면의 경우 건물 내부의 고주 사이에 형성된 내진 사방에 한 칸의 외진을

두른 형식을 취했다. 기둥 사이의 주칸 거리가 크고 기둥 높이도 높아 건물이 당당하고 안정감 있게 지어졌다.

지붕은 팔작 형식인데 지붕의 물매는 후대 건물에 비하여 완만하다. 예로부터 건물의 구조는 단면에 위치한

도리의 수를 셈하여 말하는데 이 집은 소위 9량집으로 외목을 제외한 도리가 9개나 되는 큰 건물이다.

 

 

 

 

 

 

 

 

 

 

 

 

 

 

 

소조아미타여래좌상 (국보 제45호)

현존하는 유물을 시대별로 살펴보면 신라시대의 것으로는 절 입구에 세워진 당간지주, 무량수전 동쪽의 석탑을 비롯한 3층석탑 3기,

석등 2기, 자인당에 봉안된 3구의 석불좌상이 있으며 고려시대의 유물로는 무량수전의 주존으로 봉안된 소조아미타여래좌상, 조사당에

그렸던 벽화 6점, 원융국사비, 그리고 화엄경 목판 등을 들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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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들에게 한국 전통 건축의 특성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사찰을 말하라면 대개 영주 부석사를 첫 손가락에 꼽는다. 그만큼 부석사는 전통

건축에서 느낄 수 있는 멋과 맛을 모두 갖추고 있다. 신라시대 의상 조사가 창건한 이후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도 법등이 끊기지 않은

오랜 역사성, 이 절만이 갖는 독특한 공간 구조와 장엄한 석축단, 당당하면서도 우아함을 보이는 세련된 건물들, 오랜 세월을 거치며 단련된

대목을비롯한 많은 장인들의 체취가 베어날 듯한 디테일은 부석사가 우리나라 사찰 가운데 으뜸을 차지하게 하는 요소들이다.

 

 

부석사의 우수한 건축미는 서양의 건축과 문화에 식상한 우리들에게 가슴이 확트일 만큼 시원한 청량제가 된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앞으로 전통을 계승해 나갈 방향까지도 제시한다. 이런 맥락에서 부석사는 진정한 한국 건축의 고전(古典)이라 하여도 지나치지 않는다

 

 

영주 부석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집이다. 그러나 아름답다는 형용사로는 부석사의 장쾌함을 담아내지 못하며, 장쾌하다는

표현으로는 정연한 자태를 나타내지 못한다. 부석사는, 오직 한마디, 위대한 건축이라고 부를 때만 그 온당한 가치를 받아낼 수 있다.
한낱 여행객, 답사객의 눈이라도 풍요로운 자연의 서정과 빈틈없는 인공의 질서를 실수없이 읽어내고, 무량수전 안양루에 올라 멀어져가는

태백산맥을 바라보면 소스라치는 기쁨과 놀라운 감동을 온몸으로 느끼게 될 것이니 부석사는 정녕 위대한 건축이요,

지루한 장마 끝에 활짝 갠 맑은 하늘과 밝은 햇살 같을 뿐이다. . .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창작과 비평사))

 

 

 

"부석사는 창건 당시의 정치적 사회적 여건 속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을 뿐 아니라, 해동 화엄종의 최고 사찰이라는 종교적

중요성도 갖는다. 그러나 우리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희귀한 고려시대의 목조건축을 두 채씩이나 가지고 있다는 희소성과 함께, 터를

고르고 정리하는 안목부터 거대한 자연에 대응하여 종교적인 감동의 장소를 구현한 건축적인 구성의 뛰어남일 것이다. 구성의 기법

가운데 큰 특징들로는 '대지 전체가 여러 단의 석단으로 나뉘어 구축되었다. 범종각까지의 구성축과 무량수전의 축이 분리 굴절되어 있다.

무량수전을 비롯한 여러 구성요소에서 치밀한 시각적 조정이 이루어져 있다'는 점들이다. 이 특징적 기법들은 각각 교리적인 이유와

지형적 해석, 그리고 부석사 자체의 건축적 개성에서 출발하고 있다.
(김봉렬, '건축의 계획과정: 부석사'(월간 <이상건축> 9511:"한국 고전 속의 건축 이론" 시리즈 1)

 

 

 

부석 [浮石]

무량수전 서쪽뒤에 浮石(날아 다니는 돌) 이라는 바위가 있다.

현재도 가운데 부분은 떠있어 실을 뒤에서넣어 앞에서당기면 끊어지지않고 실이통과된다고한다.

 

 

 

 

 

 

 

 

 

 

 

 

 

 

▶ 조사당 (국보 제19호)
조사당은 무량수전에서 북쪽으로 약간 떨어진 산 중턱에 있다.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작은 전각으로 측면 쪽으로 약간 비스듬히

진입하여 소박하고 간결한 느낌을 준다. 지붕은 맞배 형식으로 간단해 보이지만 넉넉하게 뻗어 나와 결코 작은 건물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1916년의 해체 공사 때 발견된 장여 위의 묵서에 의하면 조사당은 고려 우왕 3년(1377)에 원응 국사가 재건한 것이다.

조선 성종 21년(1490)에 중수하고 성종 24년(1493)에 단청하였으며 선조 6년(1573)에는 서까래를 수리하였다.

 

 

 

 

 

 

 

의상(義湘)을 사모하였다는 선묘(善妙)낭자상.

부석사의 이름이 유래한 바위로 의상대사를 흠모하다 바다에 몸을 던져 죽은 중국인 처녀 선묘의

전설이 전해진다. 의상이 다른 종파의 반발로 이곳에 절을 짓지 못하자 용이 됐던 선묘가

커다란 바위로 변해 이들을 내쫓아 절을 지을 수 있었다고 한다

 

 

 

자인당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 2구[보물 제220호]와 자인당 석불좌상[중앙].

 이 2구의 불상은 처음부터 부석사에 있던 것이 아니라 부석사 동쪽의 폐사지에서 옮겨 온 것이다.

양손이 깨어졌고 얼굴과 대좌 일부가 파손되었으나 광배와 대좌를 모두 갖추고 있다. 자인당의 두 비로자나불

좌상들은 세부 조각만 약간 다를 뿐 형태와 조각 양식이 거의 동일하여 같은 조각가의 작품으로 생각된다.

양감이 없는 경직된 신체와 형식화한 옷주름을 지닌 불상이나 다양한 무늬로 화려하게

장식된 광배와 대좌는 모두 9세기 후기 불상의 전형적인 특징들이다.

 

자인당에 2구의 비로자나불상과 함께 봉안되어 있는 이 불상 역시 부석사 동쪽의

절터에서 옮겨 온 것이다. 여러 형식들이 9세기 신라 하대 불상들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잘 가꾸어져있는 부석사 입구의 조경시설.

 

 

 

 

원본이 가지런히 보관되여 있는곳 http://blog.daum.net/afakim/13715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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