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정유년(丁酉年)이 저물고 2018년 무술년(戊戌年)이 다가오고 있다. 2018년은 개띠 해다. 12개 띠 동물에도 들어 있듯이 개와 우리 인류는 떨어질 수 없는 오랜 인연을 갖고 있다. 개는 가장 먼저 가축이 된 동물이기도 하다. 개띠 해 앞두고 ‘개의 과학’을 정리했다. 1. 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을까
일반적으로 개는 1만3000년~1만5000년 전 동아시아에 살았던 늑대의 후손인 것으로 알려져 왔다. 수렵생활을 하던 인류가 농경을 하면서 정착하게 되고, 마을 근처 쓰레기장에서 음식을 주워 먹던 늑대가 점차 사람에게 길들었다는 이론이다. 특히 고기(동물 단백질)뿐만 아니라 탄수화물을 소화하고 이용하는 능력을 갖추도록 진화하면서 지금의 개가 됐다는 것이다. 지난 2009년 스웨덴과 중국 공동연구팀은 개가 처음 출현한 것은 1만6000년 전 중국 양쯔강 남부 지역이고, 당시 이곳은 수렵채집 사회에서 농경사회로 전환되고 있었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으면서 이런 이론을 뒷받침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8년 벨기에에서는 3만1700년 전의 개 유골이 발견됐고, 2011년에는 시베리아에서 3만3000년 전의 개 두개골이 발견됐다.
농경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개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이는 사냥꾼들이 남긴 동물 뼈를 먹기 위해 늑대들이 찾아왔을 수도 있고, 사냥꾼이 어린 늑대 새끼를 데려와 기른 결과일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3만 년 전에 인류가 늑대를 가축화하는 데 1차로 성공했지만, 먹을 것이 부족해지면서 가축화를 일단 포기했다가 1만여 년 전에 다시 가축화를 진행했다는 이론을 내놓기도 했다. 인류 역사상 여러 시대에 걸쳐 여러 곳에서 반복적으로 개의 가축화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3만3000년 전에 늑대와 개의 중간쯤인 ‘늑대-개’가 출현했고, 점차 개로 가축화됐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클라이브 브롬홀은 『영원한 어린아이, 인간』이란 책에서 개는 늑대가 유아화한 형태라고 지적했다. 유전적 변화를 경험하면서 다 자란 개들이 어린 늑대와 비슷한 행동을 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그 바람에 사람에 의존하는 개의 특성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2. 개가 없었다면 인류도 없었다.
팻 시프먼은 국내에도 최근 번역된 『침입종 인간』이란 책에서 인류가 개를 가축화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하고 의문을 제기한다. 2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출현한 현생인류 호모 사피엔스는 5만 년 전에 유라시아 대륙으로 진출했고, 먼저 자리 잡고 있던 네안데르탈인과 경쟁을 하게 된다. 네안데르탈인은 현생인류보다 덩치가 더 크고, 사냥 기술도 뒤지지 않았다. 자칫 현생인류가 네안데르탈인에 밀려 사라졌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네안데르탈인이 현생인류에 밀려 지구 상에서 사라져버린 데 대해 시프먼은 인류가 늑대와 동맹을 맺었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늑대를 길들여 개로 가축화하고, 매머드 등을 사냥하는 데 개를 활용한 덕분에 현생인류는 네안데르탈인보다 우위에 설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인간이 개와 함께 사냥하면서 싸움 기술이 향상됐고, 그 덕분에 네안데르탈인의 숨통을 끊어놓았다는 것이다.
인간은 개를 가축화함으로써 개가 가진 달리기 능력, 냄새로 먹잇감을 추적하는 능력, 먹잇감을 둘러싸고 위협해 붙잡아두는 능력, 먹잇감을 직접 공격하는 능력을 얻었다. 실제로 개가 있으면 사냥에 큰 도움이 된다. 10명 미만의 사람이 사냥개 없이 사냥에 나설 때 획득하는 사냥감의 양은 사냥꾼 한 사람당 하루 평균 약 8.4㎏이다. 반면 개를 동반한 경우에는 획득량이 사냥꾼 한 사람당 하루 13.1㎏으로 56%나 증가한다.
개들도 도움을 받았다. 개들은 인간이 나눠주는 음식 덕분에 식량 부족에 덜 시달렸고, 다른 육식동물의 공격과 경쟁으로부터 보호받았다. 인간 주거지는 개들에게도 안전한 피신처가 됐다. 3. 아주 작은 개, 아주 큰 개
동일한 생물 종이면서 개처럼 크기나 모양이 다양한 동물은 세상에 없다. 사람들이 지난 수백 년 사이에 인위적인 교배를 거듭하면서 특정 형질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직접 먹이를 사냥해야 하는 자연계에서는 존재할 수도 없는 특성을 가진 개들도 있다. 예를 들어 2008년 1월 대구의 한 수의사는 몸무게가 0.5㎏에 불과한 ‘티컵독(Tea Cup Dog, 찻잔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작은 개)’을 개발해 화제가 된 적도 있다. 지난 2009년 뉴질랜드에는 몰티즈 품종에 속하는 ‘스쿠터’라는 이름의 개는 키가 8㎝, 코에서 꼬리까지 잰 몸길이가 20㎝에 불과해 세계에서 가장 작은 개로 소개됐다. 이런 개들이 산이나 들에서 직접 사냥에 나서기는 어렵다. 반면 ‘자이언트 조지’란 이름을 가진 미국 애리조나 주의 그레이트데인 종 개는 세계에서 가장 큰 개로 알려졌다. 선 자세에서 어깨까지의 높이가 1.09m, 체중은 111㎏이나 됐다.
몸무게가 9㎏ 이하인 개는 모두 몸 크기를 결정하는 유전자, 즉 유사 인슐린 성장인자(IGF)-1로 불리는 단백질 호르몬 조절 유전자에 미세한 변형을 갖고 있다.
개들의 다양한 털 모양도 세 가지 유전자가 어떤 조합을 이루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풍성한 수염과 눈썹을 갖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RSPO2, 털 길이를 결정하는 것은 FGF5, 털이 직모 혹은 곱슬 거리는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KRT71이라는 게 미국 국립보건연구원(NIH) 연구팀의 연구결과다. 품종에 따라 개 특성도 다르다. 그레이하운드는 유선형 몸매와 함께 곡선 구간을 달릴 때도 속도를 줄이지 않아도 되는 뛰어난 코너링 능력을 갖추고 있어 달리기를 잘한다. 경비견으로는 독일산 셰퍼드 종인 ‘타이탄 경비견’이 유명하다. 독일 전문 훈련기관에서 훈련을 받은 개는 한 마리에 1억3000만원에 팔리기도 한다.
진돗개는 뛰어난 개이지만 군견(軍犬)으로는 사용하기 어렵다는 평이다. 군견 병이 전역을 하면 주인이 바뀌는데, 진돗개는 주인에 대한 충성심 때문에 주인이 바뀌면 통제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4. 개의 능력은 어디까지 일까
개는 사람보다 후각 능력이 최소 100배는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냄새의 종류에 따라서는 1억 배에 이른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로 개의 후각 세포는 무려 2억2000만개로 인간보다 50배나 많다. 개는 코가 작지만, 냄새 입자를 잡아당기는 수용체가 많아 냄새를 잘 맡을 수 있다. 대뇌에서 냄새를 감지하는 세포 숫자도 사람보다 약 40배가량 많다, 이 덕분에 마약 탐지견이나 구조견으로 활약할 수 있다. 개는 냄새로 일란성 쌍둥이도 구별할 수 있다. 지난 2011년 체코의 연구팀은 같은 집에, 같은 음식을 먹고 생활하는 일란성 쌍둥이라도 구별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DNA로도 구별할 수 없는 게 일란성 쌍둥이이지만, 개들은 솜에 묻은 체취를 바탕으로 일란성 쌍둥이를 구별하는 데 성공했다. 개들이 수백㎞ 떨어진 집까지 찾아오는 사례도 종종 보고되고 있다. 2010년 이탈리아에서는 3년 전 휴가지에서 유괴되면서 주인과 떨어져 살아온 '로키(Rocky)'라는 개는 옛 주인집을 향해 두 달 동안 600㎞를 걷다가 발견돼 결국 주인의 품에 안겼다. 청각도 민감해서 사람보다 4배나 더 먼 거리에서 나는 소리를 감지할 수 있다. 사람이 들을 수 없는 진동의 소리도 들을 수 있다. 사람은 16~2만 헤르츠(㎐)의 소리를 듣지만, 개는 65~5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2만㎐ 이상의 초음파도 들을 수 있다. 반면 65㎐ 이하의 소리는 들을 수 없다. 개는 사람보다 간상체와 안구체의 비율이 높기 때문에 희미한 빛에서는 사람보다 더 잘 볼 수 있으나, 반대로 밝은 빛에서는 사람보다 시각이 못하다. 과거 개가 색맹이라고 알려지기도 했으나, 붉은색, 파란색, 노란색 등 색을 구별할 수 있다. 그래도 사람만큼 색을 뚜렷이 인지하지는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는 가까이 있는 것을 선명하게 보지 못해 가까이 있는 것은 냄새로 확인한다. 수정체의 두께를 조절하는 섬모체근이 잘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5. 사람의 마음마저 치유하는 개
반려동물이란 용어는 사람과 동물이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동반자 관계라는 의미다. 사람이 개에게 보호하고 도움을 주지만 개 역시 사람에게 다양한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개가 노인의 외로움을 덜어주는 효과는 익히 알려져 있다. 어린이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이스라엘 연구팀의 조사에서 애완견이 있는 집 가정의 어린이는 혈압이 낮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개가 있으면 그만큼 야외에서 뛰노는 시간이 늘어나 건강에 보탬이 된다는 것이다. 지난달 발표된 스웨덴 연구팀의 연구 결과를 보면 독신이면서 개를 기르는 사람은 독신이면서 개를 기르지 않는 사람보다 사망위험은 33%, 심장발작 위험은 11% 낮았다. 위기에 처한 사람을 도와준 개들의 미담 사례도 수없이 많다. 미담 사례 중에는 잘못 알려진 것도 있지만 그만큼 개가 사람들에게 충직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경북 구미에는 의구총(義狗冢, 의로운 개의 무덤)이 있다. 350여 년 전 구미시(당시 선산) 해평면에 살던 김성발이 술에 취해 길가에 잠이 들었는데, 들판에 불이 났다. 주인을 따라다니던 개가 인근 낙동강까지 수차례 오가며 온몸에 물을 적셔 불을 끈 뒤 자신은 불에 타 죽었다. 선산 부사 안응창이 이를 기리기 위해 현종 6년(1665년)에 해평면 낙산리 개 무덤에 비석을 세웠다.
2008년 5월 중국 쓰촨(四川) 대지진 때는 작은 떠돌이 개가 바위에 깔린 할머니를 196시간 만에 구조하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개는 8일간 할머니 곁을 떠나지 않고 입술과 목을 핥아 목을 축이도록 했고, 계속 짖어대면서 구조대를 불렀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충견 '하치'가 유명하다. 하치는 1923년 아키타에서 태어나 도쿄 우에노 교수의 집으로 보내졌다. 하치는 우에노 교수를 따라 매일 도쿄 시부야 역까지 배웅 나가곤 했다. 우에노 교수가 강의 도중 쓰러져 세상을 떠난 후 하치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10년 동안 시부야 역에서 주인을 기다리다 병에 걸려 숨을 거두게 된다. 6. 사람과 개의 소통법
개와 사람이 서로 응시를 하면 호르몬의 일종인 옥시토신 분비가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엄마와 아기 사이에서처럼 옥시토신은 신뢰와 모성 본능을 일깨운다. 개와 사람 사이에서도 이런 관계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개가 사람을 핥는 행위는 반가움을 표시하는 수단이다. 학자들에 따르면 갯과 동물들은 사냥터에서 돌아온 어미의 얼굴과 주둥이를 새끼들이 핥는 데, 이는 구토를 유발해 아직 소화되지 않은 고기를 얻기 위해서다. 늑대와 늑대 새끼 사이의 행동이 사람과 개 사이의 교감을 나타내는 행동으로 바뀐 것이다.
사람이 하품하면 개도 하품을 한다. 2008년 영국의 연구팀 실험 결과를 보면, 사람이 실제로 하품을 하면 개들이 따라 하품을 하지만, 사람이 단순히 입만 벌린 경우는 따라 하지 않았다. 개가 사람과 감정을 나눌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개는 사람의 슬픔이나 고통도 알아차린다. 개와 사람은 서로 성격에 영향을 주고받기도 한다. 개가 꼬리를 오른쪽으로 흔들면 기분이 좋은 것이고, 왼쪽으로 흔들면 무엇인가 기분이 안 좋다는 것이라는 이탈리아 연구팀의 연구결과도 있다. 지난 2008년 1월 헝가리 연구팀은 개 짖는 소리를 사람의 언어로 번역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했다고 주장했다. 당시는 정확도가 50% 수준이었다. 앞으로 인공지능(AI) 등을 활용하면 개 짖는 소리나 행동을 거의 정확하게 번역하는 날이 올 것이다. 일부에서는 개는 옳고 그른 것까지 알 수 있는 도덕적 능력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 2011년 4월 캐나다 온타리오 주에서는 주인이 말다툼을 벌이던 이웃집 사람에게 공격하도록 명령을 내리자 ‘핏불’ 종인 개가 오히려 자신의 주인에게 달려들어 물었던 사례도 있었다. 잘못된 명령엔 따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7. 친구 대접은 제대로 하고 있나
반려동물로 오랜 시간 인류와 같이한 개. 한반도에서도 신석기시대인 6000년 전 서해안 도서 지역에서 개를 키운 흔적이 나왔다. 2003년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연평도의 패총에서 출토한 뼈를 분석한 결과, 사육하던 개의 뼈로 확인된 것이다. 서울시민 가운데 반려동물을 보유하고 있는 가구 비율이 2004년 17.4%에서 지난해 20.4%로 높아졌다. 이처럼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이 늘어나는 가운데 일부 반려견은 애견카페에서 피자 같은 간식을 먹고, 이온음료를 마시며 목욕을 즐기는 경우도 있다. 닭 가슴살만 골라 먹거나 홍삼 영양제까지 먹는 개도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 한 해에 버려지는 개도 6만 마리나 된다. 유기동물보호소에서 파악한 숫자가 이 정도고 거리를 배회하는 숫자까지 더하면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버려진 개들은 떼를 지어 다니며 ‘들개’가 돼 등산객을 위협하기도 하고, 닭·염소 등 가축을 물어간다. 심지어 지난 2월 충북 옥천에서는 250㎏짜리 한우를 집단으로 공격해 잡아먹기도 했다. 개를 버리면서도 한쪽에서는 더 많은 강아지를 얻기 위해 비위생적이고 열악한 우리에 가둬놓고 출산을 강요하는 ‘강아지 공장’을 운영하기도 한다.
식용견으로 도살하는 사례도 여전하다. 특히 다른 개들이 보는 앞에서 개를 도살하는 비인도적인 경우도 있다. 가림막을 설치했다 하더라도 죽어가는 동료 개들의 비명을 듣고, 피 냄새를 맡도록 하는 상황은 동물 학대 그 자체다. 국내외에서 식용견 도살 문제에 대한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전국 최대 개고기 유통시장인 경기도 성남시 모란시장에서는 지난 2월부터 개 도살장 철거작업이 진행됐고, 22곳 중 21곳은 철거됐으나 업주의 반대로 아직 한 곳은 남아있는 상태다.
이와 함께 개가 사람을 물어 죽거나 다치게 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어 이에 대한 대책도 마련돼야 할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