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행

남원 실상사.

관주 觀周 2011. 5. 17. 17:50

      觀主의 카메라 기행.               

남원 실상사[實相寺].

 

 

 

-. 촬영일시 : 2011. 05. 15.                           

-. 카메라 : Canon EOS 5D Mark II                  
  -. 렌   즈 : Canon EF 24-105mm F4.0L IS USM  
                F/5.6,  1/200초 - 1/400,  ISO-100, 

                    조리개 우선 노출, White balanse : Auto

            -. 촬영장소 : 전북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 실상사 경내.  

-. 여의도 의사회 문화탐방팀과 함께.....         

 


지리산 자락이 감싸 안은 듯 평화롭고 풍요로운 고을 남원시 산내면에 천년 고찰 실상사(實相寺)가 있다.   
지리산의 북쪽 관문인 인월에서 심원, 달궁, 뱀사골 방면으로 향하다 보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여기서 왼쪽  

마천방면으로 가다 보면 만수천(萬壽川)변에 호국사찰로 천 년의 세월을 버티고 지내온 실상사가 나타난다.

 

 

만수천과 뱀사골 방면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만나는 지점이 산내면 면소재지, 즉 인월에서 뱀사골 방면으로 

 나타나는 삼거리 부근이다. 이 삼거리에서 동쪽을 향해보면 지리산 천왕봉이 손에 닿을 듯 눈 앞에 선하게 보인다.

 

 

 

 

 

 

 

 

실상사는 동으로는 천왕봉과 마주하면서 남쪽에는 반야봉, 서쪽은 심원 달궁, 북쪽은 덕유산맥의 수청산 등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채 천년 세월을 지내오고 있다. 대부분 우리나라의 사찰이 깊은 산중에 자리잡고 있는데 비해 지리산 자락의

실상사는 들판 한가운데 세워져 있는 것이 특이하다.

 

 

세조때(1468) 원인모를 화재로 전소됐다는 기록과 정유재란 때 왜구에 의해 전소됐다는 설이 동시에 전해지고 있다.

화재로 인해 실상사의 승려들은 숙종 5년(1680)까지 약 200년 동안 백장암에서 기거했으며 절에는 철불, 석탑, 석등

등만 남아 있었다 한다. 그러다가 숙종 때 300여 명의 수도승들과 함께 침허대사가 상소문을 올려 36채의 대가람을

중건했다. 또한 실상사는 6.25를 맞아 낮에는 국군, 밤에는 공비들이 점거하는 등 또 한차례의 수난을 겪게 됐는데

용케도 사찰만은 전화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실상사 홈페이지의 주지 스님 인사말씀중에 “뭔 절이 동네 앞에, 너른 들판 논 가운데 멋 없이 있을까?”실상사를 처음 찾은 분들이

주로 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 절은 남녘에서 가장 크고 깊은 지리산에 자리하고 있으면서도 수 만평의 논 한 가운데 놓여 있습니다.

이 너른 들판이 여름이면 새록새록 자라는 볏 잎으로 초록바다가 되고 실상사는 그 속에 마치 섬처럼 있습니다. 가을이면 벼가 익어

황금물결 일렁이는 그 속에 보물선 마냥 흔들리며 있습니다. 겨울이면 벼 베인 휑한 들판에 무상(無常) 모습으로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봄이면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너른 들판 한 가운데 마치 신기루처럼 있습니다. 마음을 열고 보시면 너른 들판 가운데 멋 하나

없이 밋밋하게 있는 그런 절이 아닐 겁니다. 불교최초 절인 ‘죽림정사’ 역시도 마을 옆 들판에 자리하였습니다"  라고 말하고 있다.

공감이 가는 고즈녁한 풍경이 정겹게 느껴진다.

 


실상사 삼층석탑 (實相寺 三層石塔) 보물 37호

실상사의 중심법당인 보광전 앞뜰에 동·서로 세워져 있는 두 탑이다. 탑은 2층으로 된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동서 두 탑 모두 탑의 머리장식이 거의 완전하게 보존되어 있는 희귀한 예이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어져 통일신라시대의 정형을 보이며, 각 층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다. 지붕돌은 처마밑이 수평이며,

밑면의 받침은 4단이고, 네 귀퉁이에서 살짝 들려 있는데, 그 정도가 부드러우면서도 경쾌하다. 특히 탑의 머리장식은 원래대로

잘 보존되어 각 장식부재들이 차례대로 올려져 있다.

 

 

이 쌍탑은 신라(新羅) 흥덕왕(興德王) 3년(828) 실상사를 창건할 때 조성된 탑으로 높이가 8.4m이다. 탑신(塔身)과 옥개석(屋蓋石)이

하나의 돌로 만들어진 통일신라(統一新羅) 정형탑(定型塔)이다. 옥개석의 추녀 밑은 수평(水平)이며 전체의 조형이 경쾌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특히 상륜부(相輪部)는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통일신라 정형탑의 원모습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보 광 전 
실상사의 주법당인 보광전은 1884년(고종 21)에 월송대사가 세운 것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건물이다.
건물 안에 모셔진 삼존상 중 본존불은 조선시대에 조성한 것이고, 좌우의 관음, 세지 두 보살은 원래

극락전에 아미타불과 함께 봉안되었던 것으로 월씨국(베트남)에서 모셔왔다고도 한다.

 

 

 

 

 

 

 

종 목 보물 제35호

남원 실상사 석등(南原 實相寺 石燈)  통일신라 시대.

 이 석등은 실상사 보광명전 앞뜰에 세워져 있다. 석등은 불을 밝히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밑에 3단의 받침을 쌓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었는데, 평면은 전체적으로 8각형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받침부분의 아래받침돌과 윗받침

돌에는 8장의 꽃잎을 대칭적으로 새겼다. 화사석은 8면에 모두 창을 뚫었는데, 창 주위로 구멍들이 나 있어 창문을 달기

 위해 뚫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붕돌은 여덟 곳의 귀퉁이가 모두 위로 치켜올려진 상태로, 돌출된 꽃모양 조각을 얹었다.

머리장식에는 화려한 무늬를 새겨 통일신라 후기의 뛰어난 장식성을 잘 보여준다.

 

 

 

 

 

 

 

 

보광전은 현재 단청이 되어 있지 않아 소박한 모습으로 실상사를 찾는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그렇지만 조선후기의 건축

양식을 살필 수 있는 좋은 자료로써, 보광전 주변에는 83평을 추정케 하는 주춧돌이 남아 있어 굉장한 규모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실상사의 문화재 목록

사적 ∙ 제309호 실상사 일원

국보 ∙ 제10호 백장암 삼층석탑 (신라말)

보물 ∙ 제33호 수철화상 능가보월탑 (신라말)
           ∙ 제34호 수철화상 능가보월탑비 (신라말)
∙ 제35호 실상사 석등 (신라말)    
∙ 제36호 실상사 부도 (고려시대) 
∙ 제37호 실상사삼층석탑(쌍탑) (신라말)
∙ 제38호 증각홍척국사 응료탑 (신라말)
∙ 제39호 증각홍척국사 응료탑비 (신라말)
∙ 제40호 백장암 석등 (신라말)
∙ 제41호 철조 여래좌상 (신라말)
∙ 제420호 백장암 청동은입사향로 (1584)
∙ 제421호 약수암 목조탱화 (1782)

지방유형문화재 ∙ 제45호 극락전 (1684)
∙ 제88호 위토개량성책 (조선시대토지대장)
∙ 제137호 보광전 범종 (1694)

중요민속자료 ∙ 제15호 석장승 3기

 

 

 

 

실상사 약수암 목조탱화  조선시대. 보물 제421호.

 

 

 

 

 

 

 

 

 

 

 

 

 

 

 

 

 

 

 

 

 

 

 

 

 

 

 

 

 

 

 

 

 

 

 

 

 


 

원본이 가지런히 보관되여 있는곳    http://blog.daum.net/afakim/13715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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